고모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고모에게
2021년 1월의 마지막 날. 겨우 몸을 이끌고 카페에 왔어요.
오랜만에 카페에 와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카페에 앉을 수도 없다가 이제 풀린 것도 있지만, 이제는 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성실함의 증거이기도 한데, 그동안 매우 게을렀다는 것, 인정합니다. 연말연시에 세우는 계획 중 저에게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꾸준히 글쓰기”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일이 바빠서,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등 일과의 핑계와 함께 제일 후순위로 밀리게 됩니다. 보세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1월의 마지막 날, ‘겨우’ 쓰게 되었다니.
고모가 우리의 곁을 떠난지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터라 이렇게 글의 힘을 빌리고 싶었죠. 집에서는 또 하염없이 울 것 같아 카페라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저에게 특히나 힘듭니다. 체질적으로 손발이 늘 차갑고, 추위를 잘 타는 것도 있지만 겨울이 주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자꾸 마음이 가라앉게 됩니다. 게을러지는 것은 기본. 잠도 평소보다 더 자면서 생활 패턴이 깨지기 일쑤입니다. 정말이지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그런데 고모가 떠난 계절이 하필 ‘겨울’이어서 앞으로 겨울은 더 좋아하는 계절이 되기 힘들 것 같아요. 고모 사진 옆에 놓아둔 조화를 일부러 풍성하고 화려하게 놓아두었다지만, 꽃이 이렇게 쓸쓸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눈 내리는 것은 그나마 즐겼지만 요즘엔 그 눈마저 감상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화장터에서 나오는 날, 눈발이 흩날리며 살 떨리는 추위는 그리움과 슬픔을 온전히 집중하는데 방해했습니다. 눈물이 채 나오기 전에 춥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찬 인간이라는 존재가 헛헛했죠.
마음의 정리가 필요할 때는 물건을 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연말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덜어내고 있습니다. 버리기 힘들어 아직까지 고민인 것 중에 하나는 ‘편지’와 ‘일기장’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 지인들과 오고 갔던 손편지, 일기는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는데, 멀리 떨어진 엄마네 집에 있던 그것들을 결국 제 집으로 가지고 와버렸습니다. 꽉 찬 한 박스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니 더욱 고민에 빠집니다. 얼마 전에 고모의 유품을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겼을까요? 차마 고무부에게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매개체가 없다면 기억하기가 힘듭니다. 저에게 버려도 되는 것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의 파편입니다. 그것을 보더라도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떠오르지 않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물건을 버릴 때 그렇게 기준을 정하니 매우 쉬웠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직접 쓴 글만큼 좋은 추억의 매개체가 있을까요? 정겹게 오고 갔던 편지의 그들이 현재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더욱 버리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어떠한 감정이 추억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고모와의 편지는 없지만 제 일기장에 고모와의 추억이 글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즈음부터 우린 같이 살았죠. 처음 고모한테서 피아노를 배우던 때를 기억합니다. 고모처럼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전 그만큼의 실력도 애정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취미로 위안을 삼았죠. 그래서였는지 고모의 유품 중 피아노를 갖고 오고 싶었지만, 오래된 터라 버리기로 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피, 땀, 눈물을 담아냈던 그것은 어떤 형태로 사라지게 될까요.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고모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특히 말투도 그렇고요. 한창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할 때, 고모는 저에게 모방의 대상자였나 봅니다. 띠동갑 정도의 나이 차이라 저에게는 친근한 ‘언니’로 느꼈던 것 같아요. 우리 가족들은 저를 통해 고모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저는 무엇을 통해 고모를 상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온전히 지금 남아있는 기억을 점점 잊히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비어 있는 공간에 무언가를 계속 채우고 싶어 졌습니다. 비우는 기준은 만들었지만 채우는 것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일상에서 소중한 것들이 그렇게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겨울 내내 제 마음은 지하에서 지상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뜩 제가 버리는 것은 잘 하지만, 무엇을 채우고 싶은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공허함이 더 컸던 것이었겠죠. 작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19라는 팬데믹 상황, 그리고 고모와의 이별 과정에서 그렇게 제가 그동안 간과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병원에 가지 못했던 것을 제일 후회했습니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병원 면회가 자제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고모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 제가 수업을 듣기 위해 가는 학교 바로 맞은편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병의 악화가 ‘순간’ 일지도 몰랐습니다.
서서히 무언가를 채워나가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제 주변의 곁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눈을 마주보며. 공간을 채워나가는 일을 함께 손잡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