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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Nov 02. 2018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삶을 보았다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체호프 단편선 이제야 읽었다. 나는 자주 실소를 터뜨렸고, 자기반성을 하다가 이내 부끄러워지곤 했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그는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여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가난하고 궁핍한 사정 탓에 의학 공부를 하며 싸구려 잡지나 신문에 콩트와 유머 단편들을 기고하여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예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인지 그의 글은 현실적이고 익살스럽고 머뭇거림이 없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리인의 죽음>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인공 체르뱌코프는 공연을 보던 중 재채기를 하는데, 앞의 줄에 앉아있던 브리잘로프 장군에게 실수로 침을 튀긴다. 몸을 숙여 사과하는 체르뱌코프에게 장군은 거듭 괜찮다고 얘기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불안감에 휩싸이고, 다음날 장군의 접견실까지 찾아가 해명한다. 사소한 실수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안감은 그를 집어삼키고 결국 그는 죽는다..


어이없고 뜬금없는 전개는 독자에게 강한 임팩트를 날린다. 체호프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주인공을 죽인다. 나는 이 짧은 분량의 단편으로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그의 작품에 홀린 듯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이 소설집 중 <베짱이>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다. 예술가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올가 이바노브나는 평범한 의사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는 남편을 똑똑하고 고상한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예술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는다. 그녀는 남편을 내심 지루하고 재미없는 남자라고 여긴다. 그녀는 화가와 불륜을 저지르는데, 남편이 병으로 죽어가자 그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인생에 겨울이 오고서야 잘못을 깨닫는 이솝우화의 베짱이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좀처럼 사생활에서 소재를 취하지 않았던 체호프가 드물게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모델로 하여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절친한 친구와 한동안 불화를 겪었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의 본질을 사유하는 <미녀>, 바보같이 시작된 내기로 감옥에서 15년을 살게 된 한 남자가 독서와 구도의 노력을 통해 궁극의 진리에 이르는 <내기> 등 하나하나가 걸작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공포> p21 


그는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관찰한다. 때때로 우리는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옳고 그름의 길을 알면서도 틀린 길을 선택한다. 후회의 쓴 맛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본능의 이끌림이 있다. 그것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늘 바보로 살아왔던 나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 웃기고 부끄러웠다. 나만 바보가 아니었네 하는 바보 같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며..


사랑스럽게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이 삶에 또 한 번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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