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불편을 생각하지 못한 이유
뉴욕에서 인턴을 하던,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SUV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나를 쳤고, 내 몸은 공중으로 붕 떴다. 몇 초 동안의 기절. 눈을 뜨니 주변이 떠들썩했다. 어떤 이는 젖은 바닥에 앉아 나의 머리를 받치며 절대 움직이지 말라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차를 통제하며 신고를 했다. 낯선 사람들이 나를 위해 이토록 분주하다니, 고마웠다. 동시에 내 몸을 휘감은 두려움과 공포. 연고 없는 미국이었기에 더 무서웠다. 5분이나 지났을까?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왔고, 나는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경찰은 계속해서 나에게 영어로 질문을 했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이를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다행히 경미한 부상이었지만, 생전 처음 겪은 사고를 되새김질하며 든 생각은 ‘나도 장애인이 될 수 있겠구나’.
뉴욕 인턴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1년 프로젝트인 청각장애인 멘토링 봉사를 시작했다. 청각장애인과 청인(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반반의 비율로 섞인 멘토들이, 청각장애인인 청소년 멘티들을 멘토링 하는 봉사다. 봉사하면서 알게 된 건, 청각장애인들은 청인이 듣는 소리와 전혀 다른 소리를 듣는다는 것. 따라서 그들의 행동을 섣불리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가 흘러가듯 한 말을 못 들을 수도 있고,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나는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충분한 줄 알았다.
8월에 다 함께 2박 3일 캠프를 갔다. 2일 차 밤에 기관 사무국장님과 멘토들의 슈퍼바이징 시간이 있었다. 나와 같은 조원이자 청인인 한 남자애가 손을 들고 말했다. 매달 진행하는 그룹 멘토링 때 속기사가 없어 청각장애인 멘토들과 멘티들이 불편함을 겪는다는 얘기였다.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왜 난 그들의 불편을 생각조차 못 한 걸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언어치료에 따라 말을 듣고 하는 정도의 차이가 큰 청각장애인들의 단체 활동에서 속기사는 필수요소다. 어떤 이들은 자막이나 수화 없이 다른 이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필수요소가 그간 그룹 멘토링 때 없었지만, 내가 불편하지 않으니 그들의 불편을 의식조차 못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여겼던 난,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문제를 제시하고, 방법을 고심하는 동안 나는 봉사에 그럭저럭 한 정도로 참여만 해왔다.
사무국장님은 속기사 문제에 대해, 아주 미안하지만 제정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 말이 씁쓸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이 정도 불편은 평소에도 많이 느끼니 감수하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그렇기에 당연한 불편도 없어야 한다. 캠프 3일 차에 우리 조의 속기사를 자처해 타이핑했다. 속도와 정확도는 떨어질지라도, 이것이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했다. 몇몇의 조원들이 내 글자에 의지했고, 그간 그들이 얼마나 불쾌하고 불편했을지 느껴졌다. 알고 나니 보였고, 다가가니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나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