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더위를 식힐 생각으로 찾은 카페는, 이미 나와 같은 마음인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화장실 부근 몇 자리밖에 남지 않은 터라, 빈자리를 놓칠 세라 아무 곳에나 덜컥 앉았다.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변기에 화장지를 뭉텅이로 넣었거나, 변기의 수압이 약해서 큰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해서였을까? 화장실 문에는 A4용지 가득 큰 글씨로 ‘화장실 사용금지’라는 글과 함께 위층 화장실을 사용하라는 문장이 쓰여있었다. 좀 더 귀찮겠다는 생각, 딱 그 정도의 마음이 들게 하는 문구였다.
살아온 세월만큼 바래버린 머리색을 지닌 할머니가 화장실 문을 잡아당겼다. 사용금지라는 이름표를 지닌 화장실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직원에게 혹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냐고 물었고, 직원은 문 앞에 붙어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무슨 화장실을 쓸 수 있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위층 화장실을 가시면 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직원이 할머니를 의아하게 생각한 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문 앞에 큰 글씨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눈이 안 좋은 사람이어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글씨였으니까. 할머니는 왜 그 문구를 읽지 못했을까? 번뜩 최근에 본 어떤 글이 떠올랐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오는 버스마다 어디 방향으로 가냐고 묻는 7-80대 어르신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들이 버스의 노선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육이 소수의 특권이었던 한국의 과도기를 겪으며 수십 년을 문맹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간판을 보거나 메뉴판을 읽는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기에 불편함을 겪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의식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너무나 많은 문자들이 둥둥 떠다녔다. 편리함으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한 이 도시가,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곳일 수 있다. 어쩌면 화장실을 찾던 그 할머니는, 내가 낯선 나라를 여행할 때의 기분을 매일 느낄지도 모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크게 빨아들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참으로 차갑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