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ino Feb 11. 2022

어슬렁어슬렁 하드 워킹(hard walking)

은평둘레길 3코스 - 이말산묘역길

은평뉴타운을 수식하는 말 중에 자주 나오는 표현 중 하나가 ‘자연친화적’이다. 그저 북한산 아래 동네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몇 달 전, 볼 일이 있어 구파발역 쪽에 가게 되었다. 시간이 여유로워 무작정 ‘구파발역’이라고 쓰여있는 버스를 잡아 탔다. 그 버스는 은평뉴타운 안 쪽을 돌고 돌아 구파발역으로 향했다. 은평뉴타운 가운데에는 높지 않은 산이 자리하고 그 둘레를 넓지 않은 하천이 감아 돌고 있었다. 천적의 눈을 피해 공들여 만들어 놓은 둥지에 파고 들어온 느낌이랄까, 버스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도 휘감기는 포근함에 소스라칠 정도였다. 산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지도 앱을 열어 확인해 보니 '이말산'이고, 조금 더 검색해  보니 이말산을 통해 은평한옥마을과 진관사까지 갈 수 있는 듯했다. 진관사는 예쁘고 은평한옥마을에는 맛있는 빵집이 있다지. 언젠가 꼭 저 산에 가 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흘러, 또다시 볼 일이 있어 구파발역 근방에 갔을 때, 구파발역 출입구 앞에 산으로 오르는 계단을 봤다. '은평둘레길 3코스', '이말산묘역길'이라는 것을 보니 전에 노리고 있던 바로 그 산과 그 길인 것 같았다. 이말산 산책의 시작점은 이곳으로 삼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한 동안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 이말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 강원도 극기훈련(!)의 관성으로 일별 3-4시간 산책이 이어졌다. 어차피 이렇게 걸어 다닐 일이라면 새로운 코스를 파보자하는 와중에 이말산이 떠올랐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말산에 가자. 인터넷 검색창에 '이말산', '은평둘레길 3코스'를 넣어보니, 구파발역 입구에서 은평한옥마을 입구까지  1시간가량 걸리는 길이라는 정보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초입의 가.파.른. 계단길을 지나면 이후에는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져 아이들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코스'라는 내용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강원도를 다녀온 후 매일같이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지내고 있으니 가능한 한 가파른 길은 피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도 앱을 확대하며 축소하며 다른 길을 찾아보았다.


결국 선택한 코스는 -굳이- 진관초등학교 맞은편 근린공원을 통해 이말산에 진입해 은평둘레길로 가는 거였다. 지도상으로 보면 은평한옥마을까지 산길 코스가 짧아 보였다. 산길, 다시 말해 언덕길을 조금이라도 덜 걸어보려는 나름의 꼼수가 섞인 선택이었다.


아아,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산길이 짧다는 것은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에서 몇 차례나 익히 맛보지 않았던가..! 나름 머리를 굴린 꼼수는 자충수로 돌아왔다. 라벤더 쉼터였나, 라일락 쉼터였나, 여튼간 ‘ㄹ’이 들어간 외래어 꽃 이름이었던 것 같은 쉼터까지 오르막 산길이 이어졌다. 난 그저 힘 좀 덜 쓰고 산책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게다가 예상과는 다르게 그쪽을 이용해 은평한옥마을 쪽으로 가려고 하니, 구파발역 방향(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하나고등학교 방향(왼쪽)으로 선회해야 했다. 어설프게 머리 쓰다가 된통 당한 셈이었다.


다행히 쉼터부터는 듣던 대로 완만한 능선길이었다. ‘이말산 묘역길’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곳곳에 묘지와 혼유석, 문인석 등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대부분은 내시와 궁녀, 상궁들의 묘라고 한다. 끝끝내 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삶을 정리한 분들의 마음을 쓸쓸히 여기지 않도록 문인석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며 길의 끝을 이어갔다.


몇 차례 인사를 하고 나니 하나고등학교가 보이고 마침내 은평한옥마을 건너편에 도착했다. 은평둘레길에서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 직진하면 그대로 진관사에 닿을 수 있다.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좋다”는 말을 들어, 꽤 규모가 큰 사찰로 진관사를 상상해 왔다. 게다가 지금은 무형문화재이기도 한 ‘진관사 수륙재’를 봉행한다고도 하니, 크고 화려한 법당이 즐비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일주문을 지날 때부터 상상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감이 왔다. 오르는 길 왼편에 계곡을 끼고 있는 부지의 폭이 넓지 않았다. 산의 굴곡 안에 폭 잠긴 곳이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들은 올라가는 길 왼편에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담한 마당에서는 입춘 기도-입춘 전날에 다녀왔다- 준비가 한창이었다. 절에 오면 대웅전은 지나치더라도 산신각은 들러야 한다. 좋은 곳에 발 디딜 곳을 내어 주어서 감사하다고, 산님께 인사드리는 나름의 절차다. 진관사에서는 독성각과 칠성각 앞에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독성각에는 동글 납작 귀여운 부처님(?)이, 칠성각에는 미소가 가볍게 흐르는 칠성님(?)이 계셨다. 유명 카페가 꽤 있기로 유명한 은평한옥마을에 왔으니 그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가 볼 생각이었지만 '가까운 곳이 최고다'라는 마음에 진관사 경내에 있는 연지원에서 음료를 시키고 잠시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햇살을 한가득 받으며 북한산 기슭의 숲길을  바라보고 있으니 집에 돌아갈 그 아득한 길에 대한 걱정 따윈 봄날 아지랑이처럼 살랑이며 사그라들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왕 마음먹고 온 이말산, 산길을 따라 구파발 역 쪽으로 내려가 볼 요량이었다. 아이들 걸음으로도 1시간이면 구파발 역과 은평한옥마을 사이를 주파할 수 있다고들 하시니, 해가 넘어가는 시간을 따져 1시간 정도를 산속에서 보낼 생각을 하고 길을 나서야 했다. 다시 하나고등학교 옆으로 올라가 능선을 따라 구파발 역 방향으로 향했다. 은평둘레길은 중간중간 안내 표시가 잘 되어 있어 어스름이 조금씩 스미는 산길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길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드디어 구파발 역 근처에 도착. 인간의 감각은 얼마나 다양하고 주관적이던가. '가파르다'라고 들은 계단은 경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정비가 잘 되어 오르내리기에 큰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관초등학교 옆 진입로의 능선보다 덜 가파르고 더 수월한 오르막이었다..


그렇게 이말산-은평한옥마을 산책(!)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하루 동안 걸은 걸음수는 약 1만 9천 보, 길이로는 15킬로미터에 육박하고 있었다. 길고 긴 반나절의 산책길. 보고 듣고 느끼는 데 집중하려고 일부러 사진은 찍지 않았다. 좋은 건 소문내지 않고 견디질 못하는 성정인데, 다녀온 후 주변에 '이말산 좋더라'는 말을 하고 다니는 걸 보니 그날의 하드 워킹은 꽤 좋았나 보다.




사족이랄까.. 이말산을 다녀온 후, 산책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마음에 계속 남는 일이 있었다. 이말산에서 구파발 역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내려오는 중에 한 여자분이 계단이 꺾이는 모퉁이에 서서 뭔가를 계속 중얼대시는 모습을 봤다. 처음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로 전화통화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좀 더 가까이 가 보니 혼잣말을 웅얼대고 계신 거였다. 짐 한 모둠 옆에 서 있던 그분은 홈리스이신 듯했다. 눈의 초점을 흐린 채 몸을 흔들면서 혼잣말을 하시는 것을 보니 일상적인 대화 등이 어려우신 분인 듯했다. 그래서, 겁이 났다. 예전에,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경우에 계신 분에게 길에서 붙들려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일단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분 곁을 조심스레 지나쳐 왔다.


돌이켜 보니 어쩌면 그분은 '부처님'이나 일종의 '신'이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외면했는데 뒤에 밝혀지기를 내가 복 지을 기회를 주려던 신이었다, 는 이야기가 종종 있지 않은가. 계단 위에 계시던 그분에게 따뜻하게 말 한마디를 건넸어야 하는 거였을까. 그런데 또다시 드는 의문은 그런 존재가 공포심이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이다. 물론, 이말산 계단에 계시던 분은 전혀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었고 그저 내가 지레 경계한 셈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복을 짓는다'는 미래의 결과에 따른 인과성을 이미 알고 조정할 수 있는 존재가 그런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등장한다는 것은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내가 겁을 냈던 그분을 돕지 못한 데 따른 것이 아닌, 그저 소통이 쉽지 않아 보이는 상대에 대해 소통 없이 두려워하고 경계한 데서 오는 죄책감을 상쇄시키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새삼, 세상은 -정확하게는 나 같은 사람이- 예전에 비해 각박해서 무서워졌지만 자연은 여여해서 위대하다는 걸 실감한다.






작가의 이전글 202201 강원도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