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의 문을 열고 DDP의 골격 아래에 섰다. 버스를 타고 그 옆을 지날 때는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우주 애벌레 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밑을 파고 들어가니 에덴동산의 선악과 그늘 아래 온 것 같았다. 금단의 과일을 따 먹기 전, 마냥 쾌락에 젖어도 괜찮을 바로 그 느낌.
살바도르 달리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전시는 알려진 대로 ‘살바도르 달리’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그림(기억의 지속)을 비롯해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유명한 작품 위주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뭔가 달리의 작품을 소개한다기보다 달리라는 인간을 보여주는 데 가까운 느낌을 주는 전시였다. 살바도르 달리에게 초현실주의라는 뭉글뭉글한 단어로 꼬리표를 다는 일이 졸렬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화가라는 틀도 그에게는 좁다.
살바도르 달리는 얇은 두께의 유리로 만들어진 구슬에 담긴 세계를 품고 다닌 인간인 것만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정도로 섬세한 사람을 이번 생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원화를 보니 인쇄된 그림에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점들을 볼 수 있었다. 달리의 그림은 색의 흐름, 다시 말해 빛의 흐름이 무척 정교해 보였다. 자연 속에 흩날리는 빛의 입자를 한 방울씩 옮겨 놓았나 싶었다. 선은 가늘고 예민했다. 그것들은 날카로워서 오히려 내리 꽂힐 수밖에 없었다. 살바도르 달리, 그의 작품은 한없이 가벼운 너른 공간 안에 어느 한 지점에만 비정형적이고 집중적으로 중력이 작용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건 추측, 아니 상상인데, 달리는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순간 자신의 존재가 배덕의 산물이라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모종의 죄책감과 배덕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구원하려 했던 자가 바로 그 존재였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성스러운 폭력이라기보다 폭력적인 성스러움이 달리의 작품과 달리를 나타내는 데 어울리지 않은가, 라는 것이 이번 전시를 보고 난 최종 감상이다.
나는 자신의 천재적임을 잘 알고 천재라고 으스대는 천재가 정말 좋다.
사족 - 집에 돌아오는 길에 츄파춥스 사 오려고 했는데 추위에 서둘러 오다 잊어버렸다. 전시장 출구에 있는 기념품샵에서 츄파춥스 팔았으면 좋았을 텐데..
또 사족 - 전시품 중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위한 달리의 삽화가 있었다. 동심을 파괴하고 싶은 이들에게 달리 삽화가 포함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을 권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난 그 책을 열렬히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