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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Jul 11. 2020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 많다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 많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빈국의 아이도 불쌍타하고

오랜 기간 무명의 설움을 겪은 트로트 가수도 불쌍타하고

자기 앞에서 밥을 한 대접 퍼 먹고 있는데도 내가 불쌍하다고도 한다.


그리고 엄마는 자기가 제일 불쌍하다.


엄마는 옛날의 자기가 너무 안쓰럽고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분노가 차오른다고 한다.

눈이 살짝 녹아 질퍽이던 흑석동 언덕길을 구멍 난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던 엄마.

본가에 다니러 가면 바지 하나를 빨아 밤새 가마솥 위에 올려두었다가 미처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새벽길을 나서던 엄마.

작은 어르신 댁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문 닫고 미처 두 발자국 떼기도 전에 '다 큰 기지배 데리고 있으려니 신경질 난다'는 통화소리를 듣던 엄마.


하지만 그때의 엄마는 미처 몰랐을 거다.


자기가 마음 내키면 언제든 차를 운전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걸.

50미터 레일의 수영장을 혼영으로 2바퀴 정도는 쉬지 않고 돌 수 있다는 걸.

김치냉장고 한 칸 정도는 제철 과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걸.

가끔은 좋은 사람들에게 칼국수 몇 그릇은 서슴없이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모든 걸 온전히 자기 힘으로 일궈낸 것이라는 걸 엄마는 지금도 모르는 것 같다.


엄마 자식은 21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가방끈이 길게 늘어졌다.

컴퓨터를 세 대 가지고 있다.

매일 저녁 따뜻하거나 뜨거운 물로 씻는다.


그리고 이 중 온전히 자기 힘만으로 일궈낸 것은 없다는 걸 엄마는 영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불쌍하지 않다.

불쌍해하고 싶지도 않다.

누군가의 앞에서 길잡이 되는 발자국 남기는 사람은 불쌍하지 않다.

그게 좀 부러워서 굳이 말하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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