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불쌍한 사람이 많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빈국의 아이도 불쌍타하고
오랜 기간 무명의 설움을 겪은 트로트 가수도 불쌍타하고
자기 앞에서 밥을 한 대접 퍼 먹고 있는데도 내가 불쌍하다고도 한다.
그리고 엄마는 자기가 제일 불쌍하다.
엄마는 옛날의 자기가 너무 안쓰럽고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분노가 차오른다고 한다.
눈이 살짝 녹아 질퍽이던 흑석동 언덕길을 구멍 난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던 엄마.
본가에 다니러 가면 바지 하나를 빨아 밤새 가마솥 위에 올려두었다가 미처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새벽길을 나서던 엄마.
작은 어르신 댁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문 닫고 미처 두 발자국 떼기도 전에 '다 큰 기지배 데리고 있으려니 신경질 난다'는 통화소리를 듣던 엄마.
하지만 그때의 엄마는 미처 몰랐을 거다.
자기가 마음 내키면 언제든 차를 운전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걸.
50미터 레일의 수영장을 혼영으로 2바퀴 정도는 쉬지 않고 돌 수 있다는 걸.
김치냉장고 한 칸 정도는 제철 과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걸.
가끔은 좋은 사람들에게 칼국수 몇 그릇은 서슴없이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모든 걸 온전히 자기 힘으로 일궈낸 것이라는 걸 엄마는 지금도 모르는 것 같다.
엄마 자식은 21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가방끈이 길게 늘어졌다.
컴퓨터를 세 대 가지고 있다.
매일 저녁 따뜻하거나 뜨거운 물로 씻는다.
그리고 이 중 온전히 자기 힘만으로 일궈낸 것은 없다는 걸 엄마는 영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불쌍하지 않다.
불쌍해하고 싶지도 않다.
누군가의 앞에서 길잡이 되는 발자국 남기는 사람은 불쌍하지 않다.
그게 좀 부러워서 굳이 말하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