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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Jul 12. 2022

엄마의 발목뼈가 부러졌다

걸음마 시즌2

엄마는 여행을 떠났다. 교외로 친구분들과 함께 하는 3박 4일 일정이었다. 그날은 여행의 둘째 날이었다. 나는 1년에 몇 번밖에 보지 못하는 친구를 만나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 지금 집이야?

- 아니. 아직 밖이야. 뭔 일 있어?

- 아니야. 그럼 이따 집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해.


나는 태어난 후로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목소리를 들으면 대강 파악이 된다. 엄마가 목소리 톤을 차분하게, 그리고 단어의 분절 속도를 일정하게 해서 말하면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엄청 화가 났는데 그걸 표출하지 못하는 상태이거나 무언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거나이다. 반사적으로 내가 뭘 잘못한 것이 있나 기억을 더듬었지만 별다른 건 없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예약했던 3일 치 숙소 요금 가운데 하루분이 환급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친구분들과 큰 싸움이 나서 사이가 틀어졌나 싶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놀라지 말고 들어.


얘기를 들어본즉슨, 친구분들과 산행을 했고, 엄마는 산행 중간에 점심식사도 부식도 부실하게 먹었고, 산을 다 내려와 숙소 근처에 와서 다리가 풀렸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는데 못 일어났고, 구급차를 불러 타고 인근의 의료원을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더니 발목뼈가 부러졌고, 그곳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응급처치만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건 예상외다. 몽골에서는 뼈가 부러지면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 액땜을 하는 거라더라는 시답잖은 위로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신 친척분의 차를 타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틀 밤을 지나고 만난 엄마는 놀라고 아파서인지 눈이 한껏 아래로 처져 있었다. 엄마는 친척분의 차를 타고, 나는 엄마가 운전해 간 차를 타고 곧장 우리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감사하게도 엄마의 친구분들은 근처에서 대중교통을 통해 귀가하신다며 오히려 우리더러 어서 가라며 길을 재촉해 주셨다.


병원에 도착한 이후로는 정신머리를 탈탈 털어가는 시간과 나날의 연속. 수술을 하지 않기만을 바랐다고는 하지만 여지없이 수술 결정이 내려졌다. 뼈가 부러지는 건 엄청난 응급상황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수술실로 직행할 줄 알았건만 그렇지도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다음 주에 수술하자고 해서 놀랐다. 내가 생각하는 응급과 실제 병원에서의 응급은 차이가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발을 딛는 것도 서서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으니 우선은 휠체어 대여가 급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각 지역의 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 휠체어를 대여해 준다고 했다. 전화를 해 보니 우리 동네는 이미 다 나간 상태. 행정복지센터와 구청 민원 센터에 전화를 돌린 끝에 보건소에서 무료 대여를 해 준다는 안내를 받았다. 다행히 보건소에는 여분이 있었다. 그 휠체어 없었으면 크게 고생할 뻔했다.


수술을 위해 입원하기까지는 3-4일의 시일이 있었다.  그 사이에 수술을 위해 진행해야 하는 검사만 해도 몇 가지. 그중에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치과 검사였다. 마취를 위한 검사라고 하는데, 심전도나 폐활량 등은 이해가 가지만 치과라니? 발목뼈가 부러졌는데 치과라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검사를 받으러 가서 의사 선생님께 연유를 여쭤봤다, 조아리면서 조심스럽게(하핫..). 의사 선생님은 아주 좋은 질문이라며 쾌활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노년층의 경우 잇몸이 약해 이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수술 중 입을 통해 삽관 등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치아가 빠져 그것이 폐로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치아와 잇몸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라는 말씀. 예전에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무시무시한 말씀은 덤이었다.


요즘 병원은 환자가 인지능력이 떨어지지 않고 도움을 받아서  화장실에 이동할 수 있으면 보호자가 없는 간호간병 통합 병동으로 입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엄마도 통합 병동 입원이 결정되었다. 입원 날, 눈물 콧물을 빼는 이별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병실에 입실. 일주일 만에 만난 엄마는 어딘지 모르게 발음이나 말투가 어눌해져 있었다. 바깥 풍경도 보지 못하고 불 켜지면 일어나고 불 꺼지면 눈 감고 시키는 대로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맹해졌다고 한다. 다행히 집에 돌아와서는 곧 예전과 같아졌지만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발목 골절 환자들의 통상적인 회복 단계를 거쳤다. 수술 2주 후에 실밥 제거, 4주 후에 목발 보행 시작, 6주 후에 깁스 제거 및 목발 없이 걷기 시작. 수술 후 7주 차가 되어가는 요즘도 엄마는 발목 부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고 굳어 있던 근육 등이 풀리지 않아 조금 잘록거리면서 걷고 있다. 나와 길을 갈 때는 꼭 손을 잡고 다닌다. 그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제대로 못 걸으면 어떡하지?'라고 묻는다. 지금도 걷는 속도를 보면 몇 주후에는 뛰어다닐 것만 같은 사람이 말이다.


엄마의 수술은 한동안 잠잠하게 숨어 있던 내 지름신을 다시 불러냈다. 회복 기간의 편의와 재활 등을 위한다며 마음의 무게 없이 인터넷 쇼핑을 해댔다. 골절인들의 필수품이라는 샤워용 방수커버, 습식 족욕통, 건식 족욕기, 밸런드보드 등등. 이 가운데 엄마가 그나마 잘 쓰고 있는 건 건식 족욕기뿐이다. 방수커버는 조금 큰 플라스틱 지지대인 반깁스(수술한 사람들은 보통 반깁스를 많이 하는 것 같다)를 하고는 그 좁은 입구로 발을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습식 족욕통은 생각만으로도 번거로워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밸런스보드는 그 위에 서면 아직 발목에 무리가 많이 가는 탓에 몇 주가 지난 후에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대신 이건 내가 매일같이 잘 쓰고 있다. 서 있기만 해도 운동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엄마를 위해'라고 하니, 엄마가 두 발로 서서 조금 더 자유롭게 다니기 이전까지의 집안일 독점(!)이라는 행적과 더불어 효심이 깊은 자식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2 동안 피치 못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집에 붙어서 온갖 집안일에 치다꺼리를 도맡았었다. 바깥 외출이 없어 답답하지 않냐는 질문도 있었지만  워낙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 그렇지는 않았다. 부작용은 따로 있다.  방식대로 집안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살림을 꾸리는 일에 대해 엄마에게 잔소리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살림살이 경력으로 보면 하룻강아지가 호랑이에게 앵앵대는 격이다. 이제  자중해야겠다.


공교롭게도 엄마의 발목이 부러진 날이 있던 그 주의 주말, 오랫동안 벼르고 있던 동네 인근의 산길 종주(?)에 나설 참이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고 지금처럼 주의를 기울여가며 재활에 힘쓴다면 겨울 즈음에는 이전처럼 10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산책하는 일도 가능할 것 같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 도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전에 발목을 탄탄히 감싸주는 등산화도 질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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