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앞서 간다.
산책을 가장한 운동길에서 나는 엄마의 발뒤꿈치를 보면서 걷는다.
뒷산이 두르고 있는 걷기길에 발 딛기까지는 눈대중으로 약 30-40도 경사 굽이를 몇 개 올라야 한다.
고개를 치켜들고 복식호흡을 하고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고 걷는다.
이렇게 하면 축지법이라도 쓰면서 (동)산을 오를 것 같지만 실상을 정반대 굽이굽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숨을 고르기 일쑤다.
그 사이 엄마는 허리를 숙이고 이건 달개비꽃, 이건 달맞이꽃, 이건 여뀌 등등을 읊다가 이내 다시 출발한다.
나는 그 뒤를 쫓기 급급해 달개비는 파랑색, 달맞이는 노랑색, 여뀌는 분홍색만 기억할 뿐 그 세세한 모양은 되새김질이 되질 않는다.
아무래도 엄마와 나는 몸무게 차이가 나니 언덕길에서 내가 우주의 무게를 살짝 더 어깨에 얹을 수밖에 없다고 치자.
거의 평지라고 할 수 있는 길에서 나는 앞장서서 듬직한 등판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산속 오솔길에는 의외의 난관이 많다.
곤충 공포증 수준인 내 앞에 장수하늘소가 길을 막고 있질 않나.
버섯 포자를 무서워하는 내 앞에 뽀얀 돌멩이처럼 생긴 버섯이 손길을 이끌질 않나.
엄마는 내 앞에서 장수하늘소를 숲 속으로 돌려보내 주고 기가 막히게 버섯인 걸 알아봐 준다.
최근에는 산모기가 기승이다.
모자나 장갑이나 부채를 휘두르며 앞에서 산모기를 쫓고 엄마에게 쾌적한 산책(을 가장한 운동)길을 터주고 싶었다.
팔을 휘적대며 산길을 걸으니 체력소모가 심하다.
"엄마, 나는 팔을 휘두르면서 걷는 건 무리 같아."
엄마는 모자나 장갑이나 부채나 가끔은 길에 떨어진 잎이 달린 도토리나무 가지를 휘두르며 모기를 쫓는다.
"모기 물리지 않게 뒤에 꼭 붙어서 따라와."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만,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을 그리고 어른이 아이가 되는 순간을 너무나 여실히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게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누가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고 나란히 걸을 수 있기를.
그때까지 엄마가 오랫동안 앞서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