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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Aug 22. 2020

비수면 위내시경 한 날

눈을 떴는데 물을 마시지 못하다니,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서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엄마는 고지혈증 검사를 했고 그 결과를 들으러 가기로 했다. 병원에 같이 가는 김에 벼르고 있던 건강검진과 위내시경을 받기로 했다. “수면인가요?”라는 질문에 호기롭게 “비수면이요.”라고 대답했다. 올해 초 먼저 건강검진을 받은 엄마가 비수면 위내시경을 하면서 ‘할 만하다’고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마취 상태에서 내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일지 도통 알 수 없다는 게 무서웠다. 게다가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예전에 헌혈을 할 때, 혈관이 곧고 뚜렷해서 헌혈하기에 굉장히 좋은 혈관이라는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어쩐지 몸속의 온갖 구멍길들이 온갖 검사에 최적화되어 있으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분명 위내시경 따위는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해내겠지.


건강검진이야 기본 검진이라 별 거 없다. 소변검사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검사실로 돌아와 보니 내가 가방을 올려두었던 탁자 위에 엄마 가방과 엄마 안경과 엄마 시계가 올려져 있다. 반 이상 쳐진 커튼 뒤 침대 위로 엄마의 발목이 보인다. 고지혈증 검진 중에 누워서 받는 것도 있나. 간호사 선생님을 따라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면서도 고개가 갸웃해진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위내시경 검진이 이루어질 방으로 들어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작은 비닐포에 들은 물약을 삼키라고 하신다. 조영제 같은 건가 싶어 살짝 긴장한다. 예전에 위 투시 조영술인가를 받을 때 시멘트 같은 걸 마신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어? 의외로 맛있다. 조금 진하고 걸쭉한 이온음료 같다. 다음으로는 목 마취제 차례란다. 목구멍 쪽에 분사되면 열을 센 후 꿀꺽 마시라고 하신다. 이건 좀 기분 나쁘다. 목구멍이 마비되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는 게 더 불쾌하다.


침대에 똑바로 누우니 이내 곧 옆으로 돌아 누우라고 한다. 얼굴 옆에 빳빳하게 마른 수건이 깔리고, 개구기라고 하나, 입에 구멍틀이 하나 물린다. 그 구멍을 통해서 그리고 내 몸속의 구멍길을 통해서 검은색 내시경이 들어온다. 아무런 저항 없이 술술 잘 들어갈 것만 같았는데 내가 한 번도 내 본 적이 없는 굉음이 뱃속부터 올라와 뱉어진다. “트림은 참으세요.”라고 하시는데, 트림을 참으려면 어깨에 잔뜩 힘을 줘야 하건만 “몸에 힘 빼세요.”라고 하시니 이건 어쩌란 말인지. 속으로 ‘고통이 지천에 있다한들 어이해 멈출 수 있으랴’ 노브레인의 ‘불타는 젊음’을 불러본다.


내시경이 몸속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느껴진다. 이렇게 촉각으로만 내시경 검사를 경험한다는  내가 기대한 그림이 아니었다. 내시경이 비추는 몸속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앞에 있고 의사 선생님이 하나하나 설명을  주시고 나는 눈짓 손짓으로 알아듣는다는 표시를 하면서 검사가 이루어질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아래 놓인 수건이 침으로 젖고 있는지를 신경 쓰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나누시는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다. 눈은 뜨고 있어 내시경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보고 있다는  자존심의 초롱불처럼 마음속에서 일렁인다.


일단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데 굳이 엄마가 따라 들어온다. 위내시경 결과는 염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역류성 식도염, 굳이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란성 위염, 깨끗한 십이지장, 그리고 간단한 조직검사와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했다고 하신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다음 주에  오라고 하신다. 실시간은 아니었지만 소시지 빛의 내장 모습을 보고 나니 나는 살아있는 존재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구역질하고  흘리고 목구멍이 하루 종일 아프지만 비수면 위내시경  만하다.


여담인데, 침대 위에 누워있던 엄마는 심전도 검사 중이었다고 한다. 비수면 위내시경  만하다고 하던 엄마는 자식이  꼴을 겪을  생각하니 -당사자도  하는- 긴장을 너무 심하게  나머지 부정맥이 왔고 혈압을 재던 의사 선생님께서 심전도 검사를 권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신경  써도 되기는

하지만’ 심방 조기 수축’이라는 이름의 부정맥을 진단받았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부정맥을 부를 정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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