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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Sep 02. 2020

기적의 노고산

엄마는 젊은 시절 산악회 활동을 했다.  산악회는 동네 사람들 위주로 꾸려진 산악회 치고는 친목회의 성격보다 보다 전문적인 산행꾼들 모임의 성격이 강했다. 엄마는 산악회를 따라 전국 방방곡곡의 온갖 산들을 섭렵했다. 지금도 종종 그때 산이라도 다녔으니 모진 풍파를 이겨낼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던 엄마가 언젠가 이제 산에  가’라고 했다. 가벼운 트래킹이 아닌    시간의, 정상 산행은 굳이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산에 가서   차례 넘어져  일을 겪을   뒤의 선언이었다.  말은 마치 그래, 이제  늙었어’라고 하는  같았다.


그랬거만, 언젠가부터 다시 등산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 있는 엄마. 석모도의 해명산, 설악사 백담사 코스 등을 읊으며   갈 거야’라고 하고 있다. 문제는 거기에 너랑  갈 거야’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는 거다. 나는 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꼭대기에서 바라보지 않고  아래에서 올려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겸허한 인간인데 말이다.


최근에, 엄마는 고양시의 한북누리길을 따라 노고산에 오르는 코스에 꽂혔다.’ 그러더니 기어이 나를 데리고  길에 올랐다.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아주 편한 육산’이라는 둥, 평탄한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정상’이라는 둥이라는 표현에 넘어가기도 했다. 노고산에서 보는 북한산 풍광이 죽여준다기에   가보자 싶었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한북누리길에서 노고산에 진입하는 지점은 중고개’라는 곳인데, 거기까지는 예전에   적이 있어 어렵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는 길에 생전 처음 보는 버섯도 봤다.



처음 봤을   자태에 굉장히 놀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노란망태버섯’이라는 이름의 버섯이었다.  시간만  그물 모양의 치마를 펼치는 신기한 버섯.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표현했지만, 버섯을 무서워하는,  정확히는 버섯 포자를 무서워하는 내게  버섯은 조금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이때 깨달았어야만 했다.  날의 산행이 쉽지 않았다는 노란 경고였음을.


중고개에서 노고산에 진입하는 길은 좋았다. 깊은   예쁜 오솔길이 계속 이어졌다. 자연 속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길이었다. 나무와 흙과 돌로  트램펄린을 걷는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번째 문제는 산모기였다. 일명 아디다스 모기’라고 불리는  녀석들이 어찌나 따라붙던지..아가들도 먹을 것은 여지없이  알아보는 것이 생명의 신비라고 생각했는데, 모기들도 먹을 것은 여지없이  알아봤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것처럼 모기를 몰고 다녔다.  번째 문제는  체력이었다. 살이 쪄서 체력이 떨어진  알았던 것이, 얼마  건강검진을 통해 알고 보니 빈혈이었다. 중고개를 통해 노고산을 오르는 길은 길고 긴’ 길이었다. 끙끙대며 가다 쉬다를 반복해 겨우 사람들이 북한산 전망대’라고 부르는 곳까지 갔다.



조금 흐리기는 했지만 북한산 전망은 훌륭했다. 안타깝게도 북한산 정기가  체력을 충전시켜 주지는 않았다. 정상이고 뭐고  정도에서 그만 내려가야 하나 싶었는데.. 북한산 전망대에서 해먹을 치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계시던 분이 말했다.  2, 30분?   딱히 없지만 오르막   번만 가면 그냥 평지길이에요.” 맘먹고 왔다는 엄마의 말에 그럼 가야죠.”라고 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30분만  고생해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길에 올랐다.


나는 이제 안다. 산악인’들의 30분과 평평하다는 말은 믿을  못된다는 것을. 북한산 전망대부터 노고산의 기적은 시작되었다. 평탄하다던 능선길은 심하지는 않아도 잔잔한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만난 사람들에게 엄마가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물어봤는데, 아무리 가도 가도 만나는 사람마다  30분?’이라는 답을 주었다! 나중에는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눈물을 찔끔 흘려가며 가고 있는데 다들 30분이라고만 하니, 이게  일인가 싶었다.


결국, 정상은 찍고 오지 못했다. 물도  마신 상태이고 정상은 여전히 30 남았고 나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고 해서 흥국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정상 찍은 셈이야.’라는 엄마의 말이 아까워.’라고 들리긴 했지만,  북한산 전망대에서 만난 분들마다 여기 전망이 최고’라고 하니 아쉬울  없었다.


엄마도 이제 노고산은  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가을이나 되어서 날씨 시원하면 오든지...’라고 흘린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말이  아직  늙었어.’ 같아 발을 구르며 이제  가!’라고는  하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30분은 정말 30분이   있도록 빈혈 탈출, 체력 단련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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