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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Feb 21. 2021

잘못 걸려온 전화 - 사채업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7시간 정도 차를   집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엄마의 휴대전화가 벨을 울렸다.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엄마가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에 엄마는 스피커폰 통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일이네.’했다. 


네? 네?”

아닌데요.”


상대방의 목소리는 낯선 남성의 것이었다. OOO 찾는 전화인데   들리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저 잘못 걸린 전화인가 싶었다. 그런데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대신 받았다.


- 여보세요.

- ...

- 여보세요.

- 누구세요?


잔뜩 목소리를 내리깐 남자. 전화해 놓고 다짜고짜 누구라고 묻는  황당했다.


- 그건 전화를 거신 쪽이 먼저 말씀하셔야죠.

- 사채업자인데요.

- 예?

- 사채업자라고요.

- 저희는 사채를  적이 없는데요.


  마디에  그리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하는 것인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사람은 지금 위협적으로 말하고 있는 거구나.


- 조금 전에 통화했던 사람 바꿔주세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보니,  사람은 채무자에게 독촉 전화를  것이고, 전화를  보니 말이   끝났는데 전화가 끊겼고, 어쩌면 열이 받아 다시 전화를   같았다.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 아, 조금 전에 전화를 받은  저희 엄마인데요.   들린다고 해서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OOO 씨를 찾으셨다고요.

- ...네.

-  전화는 OOO  전화가 아닙니다.

- ...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 아닙니다.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이렇게 순순히 물러난다고? 사채업자라면 거짓말하는

 아냐?’라고  번쯤 되물어야 하는  아닌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통화의 끝에  이유를 추정해 봤다. 가능하다고 생각한 안은  가지. 첫째,  업자는 초심자이다. 대개 사채업소에서 돈을 빌릴   자리에서 전화번호 확인을 하지 않을까. 그런 절차를 생략했던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사채업자를 만화나 영화로 배웠다.) 둘째,  목소리가 너무나 해맑았던 나머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없었다. 통화를 마친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남자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스피커폰을   것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사채업자라는 그. 나는 사채업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사채꾼 우시지마’가 떠올랐고 겁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처럼만 산다면 앞으로도 사채업자를 만나거나 통화할 일은 없을 거고, 그럼 나는 평생    있을 법한 사채업자와의 통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미쳤다. 그랬더니 아드레날린이 분출, 무섭고 신나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번째 이유 때문에  업자가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통화가 끝나고  후, 괜히 OOO 씨가 걱정이 되었다. 사채업소의 실수가 아니라 OOO 씨가 고의로 잘못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면,  후폭풍이  크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의 등줄기를 따라가니 다른 의문점이 들었다.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자는 원금의 20%, 1개월 후에 이자와 원금 상환하기로 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사채업자는    갚지 않으면 편히 지내지는 못하실 겁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1개월 후, 나는 돈을 갚지 못하고 사채업자는 나에게 찾아와 25% 이자와 원금을 갚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며  약속의 징표라고  얼굴에 주먹을 날려 코피를 쏟게 만들고 떠났다. 나는 부당한 이자 요구와 협박, 폭력 행사 등의 명목으로  사채업자를 경찰에 고소한다. 


이런 경우, 나쁘거나 혹은  나쁜 쪽은 누구일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계약에 참여했지만 그것을 이행하지 않은 나인가. 높은 이율로 취하는 이익과 폭력은  자체로 나쁜 것이므로 그것의 행위자인 사채업자인가. 


이런 상황에 잘잘못을 가리자고 하는  불손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변명을 보태보자면, 이건  탓이

아니라  [사채꾼 우시지마] 때문이다. 대중문화란 가치판단의 회색지대를 만들어 사람들을 흔들  있음을, 그리고 심지어 사채업자에 대한 공포도 스릴로 바꿀  있는, 간을  밖으로 내던지는 묘약과도 같은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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