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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저리 BOOKS

[저리 books] - 눈 떠보니 선진국 #01

이제 '신뢰 자본'을 제대로 쓸 때다

by 아이엠 저리킴

※ 본 내용은 IT 현자 '박태웅 의장'의 책 <눈 떠보니 선진국 : Already, but not yet>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해석한 글입니다.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원하시면 책을 구입하셔서 읽기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일이 바로 카페에서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채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지하철에서 가방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잠이 드는 것, 택배를 현관문 앞에 두고 가는 것도 외국인들에게는 너무 낯선 풍경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과 미국에 자주 출장을 다녀 봐도 선진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기본적으로 훔쳐간다는 것을 전제로 주의 깊게 행동하게 된다.


카페 테이블 위 노트북, 지하철 선반 위 가방, 현관문 앞 택배 상자 모두 누군가 훔쳐가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는 행동들이다. 이게 바로 신뢰 자본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신뢰 자본이 10%만 올라가도 GDP가 0.8% 올라간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 자본이라는 것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이 책에서는 신뢰 자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서울역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역에는 검표원이 없지만, 개찰구는 항상 열려있다. 표를 꺼내 보일 필요 없이 자유롭게 기차에 탑승한다. 승무원은 단말기를 들고 다니며 팔리지 않은 자리에 사람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무임승차를 하다 걸리면 10~30배의 벌금을 부과한다. 몇 명의 무임승차를 위해 모든 승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예전 방식을 대부분의 승객을 편하게 해 주면서 무임승차자에게 높은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에 두텁게 쌓인 신뢰 자본과 IT 기술이 합쳐지면서 생긴 놀라운 변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저자인 박태웅 의장은 이 신뢰자본의 사례가 서울역 앞에서 딱 멈춰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많은 박사들과 고급 연구원들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서 연구하는 경우, 연구 대신에 정부에 제출할 증빙자료와 영수증에 풀칠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IT 업계의 경우 트렌트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막상 연구를 시작할 때쯤 이미 낡은 주제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연구하는 사람을 믿고 재량권을 주고 믿을 만한 사람과 자유롭게 연구 과제를 정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정하고, 자금 유용과 횡령이 발견되면 서울역에서처럼 페널티를 강하게 제공하는 방식이면 훨씬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디테일한 룰은 다시 세팅해야겠지만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모두가 불편한 방식을 택할 것이 아니라 신뢰 자본을 적극 활용하면 충분히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인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연구를 활성화하고 불성실한 연구에 대한 강력한 페널티를 주는 방식이면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만 처벌과 페널티가 강력하고 예외 없이 공정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의 선량한 연구자들의 마음에 불필요한 빈틈을 만들어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 사회는 처벌에 관대한 측면이 있다. 사형제도가 시행되지 않은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경제 사범 중 3백억 원이 넘었던 11명 전원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음주운전도 3번을 해야 겨우 삼진아웃이고 그나마도 몇 년이 지나면 생계형 운전자라는 명목으로 슬그머니 사면이 된다. 음주 상태로 인명 사고를 내도 고작 몇 년에, 가해자가 반성을 한다고 감형,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 또 감형 이런 식으로 자꾸 예외 규정을 두니 지키는 놈이 바보가 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신뢰 자본이라는 것은 내가 룰을 지키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페널티를 받을 것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서울역에서 무임승차로 10~30배를 토해내는 것처럼.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사람 혹은 언론사에게 피해액의 5배를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력히 적용하면 가짜 뉴스가 사라질 수 있다. 이게 우리 사회에 쌓인 신뢰 자본을 제대로 활용하는 길이고, 신뢰 자본을 제대로 쓰는 사회가 진짜 선진국이다(*).




위 내용의 대부분은 <눈 떠보니 선진국>의 '제1부 선진국의 조건' 챕터 중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에 내 의견을 조합한 것이다. 특히 볼드 표시와 (*)를 표기한 부분은 저자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다. 나 역시도 서울역을 자주 이용하면서 한 번도 이 '신뢰 자본'에 대한 인식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선진국에 진입을 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일단 인식을 해야 고칠 수 있는 것이니 이제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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