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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저리 BOOKS

[저리 books] 눈 떠보니 선진국 #02

오늘은 띄어쓰기와 맞춤법 검사를 거부한다

by 아이엠 저리킴

※ 본 내용은 IT 현자 '박태웅 의장'의 책 <눈 떠보니 선진국 : Already, but not yet>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해석한 글입니다.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원하시면 책을 구입하셔서 읽기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한글은 본래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훈민정음 해례본도 세로로 정리되어 있고 띄어쓰기는 없었다. 아마도 몇 백년간 한자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서일 것이다. 최초의 공식적인 한글 띄어쓰기는 아이러니하게도 1877년 영구 목사 존로스가 펴낸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에서부터라고 한다.(*)


영어권/유럽권 언어에서는 띄어쓰기가 필수이다. 띄어 쓰지 않으면 아예 문장이 성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글은 사실 띄어쓰기가 없어도 읽는 데 전혀 지장은 없다. 하지만 외국 선교사의 눈에는 그게 불편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체육회'가 '서울 시체 육회'가 되기도 하고, '김제동총등학교'가 '김제동 초등학교로', '동시흥분기점'이 '동시 흥분 기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띄어쓰기의 편리함이 대중들에게 빠르게 확산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사용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띄어쓰기는 이렇게 사후적 정리에 불과한데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자의적이며, 어렵다.(*) 규정이 본질을 방해하는 단적인 사례이다. 정작 원저작권자인 세종대왕도 지금의 띄어쓰기 규정으로 시험을 보면 아마 '빵점'짜리 학생이 되고 말 게 분명하다.


*아침은 커녕 VS 아침은커녕
*도와주다 VS 도와 주다
*머릿속에 VS 머릿 속에
*천 원 어치 VS 천 원어치
*30분가량 VS 30분 가량 VS 30분 정도 VS 30분 쯤
*인상쓰다 VS 인상 쓰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 VS 신발이 클 듯하다


띄어쓰기가 자주 틀리는 사례 몇 가지를 가져와 봤다. 위 문장 중에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몇 개나 될까. 사례집에서 방금 찾아왔지만 나도 금세 잊어버렸다. 브런치에서야 맞춤법 검사라는 기능이 있으니 그나마 낫지만 보고서나 이메일 등을 보낼 때는 최소 몇 번씩은 띄어쓰기 검색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최근에는 문장 전체를 브런치에 복사해서 수정한 것을 다시 메일에 복사하는 짓(?)을 하고 있다.


내용 전달에 전혀 문제가 없고, 언어 파괴를 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 띄어쓰기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사회적 체면뿐이다. 띄어쓰기를 하나 틀렸다고 사람이 갑자기 무식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이까짓 띄어쓰기의 굴레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글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형식과 문법에 더 집중하는 경우도 많다. 마치 유튜브의 본질인 콘텐츠의 내용보다 화려한 촬영 기법이나 편집에 목을 메는 사람처럼... 내용이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문서를 볼 때 오타만 먼저 죽어라 찾는 사람도 있다.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말이다.


글과 문법은 사후적이다. 규칙이 만들어지고 그에 맞춰 사용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한 것을 규칙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그 정리가 다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틀 준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 사용자에게 오히려 위축감을 주는 문법과 띄어쓰기는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


또한 젊은 세대가 줄임말을 많이 사용한다고 기성세대들은 뭘 저렇게까지 줄이냐며 핀잔을 준다. 15,000년 전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도 '요즘 것들'의 버릇없음을 탄식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던 90년대에도 수많은 줄임말과 신조어가 있었다. '옥떨메', 'KIN', '안습', '오나전', '열공', '출첵', '므흣', '강부자&고소영' 등등 그때도 당시 어른들은 이렇게 얘기했겠지. '세상이 망할라고 저렇게 말을 줄여 싼다냐?'


아시다시피 세상은 망하지 않고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말과 글은 소통하기 위한 도구이다. 형식은 그다음 순위이다. 부디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가 되지 말고, 오타와 띄어쓰기가 잘못됐다며 '기본이 안 돼있다'라고 호통치지 말자. 내용과 본질에 우선 집중하고 그게 다 정리되고 나면, 그때 가서 체크해도 늦지 않다.




오늘 글은 맞춤법 검사를 생략하고 올렸다. 오로지 내가 가진 상식만 가지고 띄어쓰기를 해보았다. 틀려도 상관없다. 내용이 별로여서 실망하는 건 인정하겠지만, 띄어쓰기로 내게 실망감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올린 내용도 <눈 떠보니 선진국>의 '제1부 선진국의 조건' 챕터 중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에 내 의견을 조합한 것이다. 특히 볼드 표시와 (*)를 표기한 부분은 저자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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