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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저리 BOOKS

[저리 books] 눈 떠보니 선진국 #03

'왜'는 사라지고, '무엇을'과 '어떻게'만 남은 세상

by 아이엠 저리킴

※ 본 내용은 IT 현자 '박태웅 의장'의 책 <눈 떠보니 선진국 : Already, but not yet>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해석한 글입니다.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원하시면 책을 구입하셔서 읽기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우리 사회에는 '왜'라는 물음이 매우 낯설다. '왜'라는 것은 철학이자, 정의(definition)이다.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빠른 속도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아야 했기 때문에 '왜' 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던 시절이 있다. 언제나 베낄 것이 있었고, 선진국의 사례가 있었고, 누군가가 먼저 가본 길이기 때문에 '왜'라는 물음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을 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책에서는 <원격진료>, <스마트시티>, <4차 산업혁명>, <IT와 AI> 등 사회적 현안을 중심으로 사례를 들었다. 앞으로 미래 세대에 필요한 기술이고, 아직 아무도 가본 길이 아니기에 '왜'라는 물음이 더 중요해진다. 분명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는 기술이지만, '왜'라는 정의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인간을 해치는 무기로 변할 수도 있다. 불법 생명 복제, 딮페이크 포르노, 불법 블록체인 등과 같이...


조금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들어 보자면, 최근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된 <수술실 CCTV 의무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왜' 이런 사회적 논란이 발생한 것일까. 의료인 스스로 그 사태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아주 소수의 경우이긴 하지만 대리 수술, 무면허 수술, 성추행, 단순 실수, 음주 수술 등 수술실 내에서 각종 반인륜적 범죄들이 수시로 발생하며 많은 환자들이 피해를 보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범죄를 저지른 병원이나 의사에게 가해지는 처벌의 수위도 너무 가벼웠고, 심지어 극악의 범죄를 저질러도 의료 면허를 박탈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의료인들 스스로 자정작용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한 결과, 그러한 범죄 행위들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어떻게'의 일환으로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이 전 국민 90% 이상의 동의를 토대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권위적인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언론과 하나가 되어 법안 반대를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 의료인들의 불법 행위 → 피해자 입증이 어려움 → 솜방망이 처벌 → 자정작용 없이 제 식구 감싸기 → 의료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전 국민적 분노 → 수술실 CCTV 의무화 추진 → 법안 반대 투쟁




멀리 가지 않더라도 당장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새로 설립한 (주)그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그늘>을 '힘들고 지칠 때,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수많은 미생들과 청년들이 <그늘>에서 다양한 시도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함께 동반 성장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회사이다. 수익보다는 기회 창출이 우선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어떻게'를 고민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우리는 유튜브 <너의 나이가 보여>라는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아직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출연하여 나이를 맞추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막상 섭외, 촬영, 편집, 런칭의 과정을 거치며 많은 피드백을 받으니, 많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험난한 유튜브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걸 해야 하고, 저런 걸 해야 하고, 우리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편집이 어떠니, 시간이 어떠니, 음향이 어떠니, 의상이 어떠니, 촬영이 어떠니 하는 의견들은 물론 매우 중요한 지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의도'는 사라지고, '기술'만 남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시작하자마자 구독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돈을 벌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으면 이런 유튜브는 시작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늘> 조차 시작해서는 안 되는 회사였던 것이다.


<그늘>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 기술적인 보완이 이루어져야지, 실패를 하더라도 보완이 가능한 것이다. 실패가 두려워 기술에만 집중하고 목적과 취지가 희석된다면 즉 '왜'가 사라지고 '어떻게'만 남는다면 그건 혹여 성공을 하더라도 실패한 것이다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매사 이렇게 복잡하게 따져가며 사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할 때, 꼭 한 번쯤은 '왜' 이 일을 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돌아보길 권한다. 그 토대 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도 늦지 않다.


오늘 올린 내용 역시 <눈 떠보니 선진국>의 '제1부 선진국의 조건' 챕터와 '제3부 AI의 시대' 중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에 내 의견을 조합한 것이다. 특히 볼드 표시와 (*)를 표기한 부분은 저자의 문장을 최대한 그대로 인용한 부분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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