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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Aug 26. 2021

사춘기 아들을 바꾼 '세 가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사춘기의 종말

뭐? 이 새끼가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3년 전 이맘때, 지금은 고1이 된 당시 중1이던 아들과 한동안 매일 매일이 전쟁이던 어느 날. 엄마에게 험한 소리를 해대는 큰 아들에게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예전 같으면 쫄아서 눈도 못 맞추던 아들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맞받아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OMG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들이 서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주먹을 들어 아들 얼굴 옆으로 스쳐 붙박이장의 문을 때렸다. 아들은 나의 이런 낯선 모습에 무척 당황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번만큼은 조금 강하게 겁을 주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성공했으나 이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오른손이 너무 욱신거리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손가락 2개가 부러진 뒤였다. 그렇게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녔다. 철심까지 박은 깁스 내부는 한여름 더위와 맞물려 엄청난 똥냄새로 괴로웠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나빠지는 아들과의 관계였다. 동글동글한 얼굴은 어느새 길쭉하고 갸름한 얼굴로 변해있었고, 집보다는 친구가 좋아 밖으로 싸돌아 다니기 일쑤였다.



아들과 아내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중학교에 들어가서 엄마의 키를 넘어서던 그 시기와 우연히 맞아떨어졌다. 과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둘 째마저 엄마의 키를 넘어서는 시점부터 소심한 반항이 시작된 걸로 보아, 어느 정도 영향은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튼 중2병이 조금 일찍 왔나 보다 싶었으나 그때의 그 반항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중2가 되자 아들은 더 심각하게 삐뚤어졌다. 아들의 키가 어느덧 170을 넘어서면서부터 이제는 나에게도 본격적으로 대들기 시작했다. 중3이 돼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몇 번이나 건넜다. 단순히 청소년의 반항 수준을 넘어 저러다 정말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범죄 행위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반항의 정도는 점점 심해졌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집안에 싸움과 냉전이 반복되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내가 선을 넘어 버리면 나중에 아들이 정신 차려 돌아오려고 할 때, 다시 그 선을 넘어오지 못할까 봐 최대한 조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2인 아들은 이름값에 걸맞게 최선을 다해 중2 노릇을 했다.



1. 첫 번째 선물

2020년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들 녀석이 웰시코기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어떤 글에서 강아지가 사춘기를 완화시켜주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봤었는데, 마침 아들이 먼저 제안을 하니 나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아내는 결국 본인이 케어해야 할 것이 뻔했기에 결사반대를 했지만, 긴 설득을 통해 일단 강아지를 보러 함께 갔다. 우리는 분명 웰시코기를 보러 갔었는데, 아내는 닥스훈트에 푹 빠져버렸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두 마리를 다 데려오기로 했다.


산책도 시키고, 목욕도 시켜준다는 아들들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들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 준 첫 번째 선물이 바로 다리(웰시코기)와 도리(닥스훈트)이다.


2. 두 번째 선물

2020년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지 얼마 안돼서 대한민국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처음엔 한국과 중국에서만 퍼지더니 이내 전 세계로 그 확산세가 이어졌다. 철도 없고 겁도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그깟 코로나가 대수롭지 않았다. 확진자가 몇 명이던 관계없이 끊임없이 밖으로 돌았다. 그러다 점점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확진자가 우리 주변으로 좁혀오자 아들이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벌써 1년 반 가까이 코로나가 이어지고, 수업도 거의 온라인 위주로 하니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거기에 잠시나마 노래방, PC방 집합 금지까지 걸려 나갈 명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을 덜 만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족들에게 조금은 덜 사납게 말을 했다. 세상 허세 다 짊어진 그 포스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코로나가 선물한 몇 안되는 베네핏이다. 


3. 세 번째 선물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회사도 꿋꿋하게 잘 버티다가 7월부터 9월까지 유급 휴가를 결정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스포츠 대회이다 보니 회사에 게임 전용 PC가 있었는데, 유급 휴무에 맞춰 게임용 PC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최신형은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게임은 돌아갈 정도였는데 특히 아들이 즐겨하는 L.O.L이 돌아가기에는 충분한 사양이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PC방도 문을 닫고,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데 게임용 PC가 집에 생기니 더더욱 외출할 일이 줄었다. 최대 14일 연속으로 집에만 있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집돌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가족끼리 먹고, 놀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졌다. 전에는 식탁에서도 핸드폰만 보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녀식이 점점 식탁 수다가 길어졌고, 투머치 토커인 내가 그만하고 들어가서 게임이나 하라고 할 지경이 되었다.


물론 공부와는 철저히 담을 쌓았고 우리 부부도 더 이상 공부에 대해서는 강요하지 않기로 선언했으니 가정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공부라는 것이 인생의 필수 요건은 아니기에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다. 나중에 본인이 굳이 공부를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먼저 공부로 떠밀지는 않을 예정이다.




불과 3년 전, 내 아들이 어찌 저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망연자실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저런 망나니 같은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분명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그 사춘기가 이제 점점 막을 내리고 있다. 강아지, 코로나, 컴퓨터 이 세 가지 선물 중 어떤 이유 때문인지 정확히 분석해낼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참 잘 맞았던 것 같다.


만약 그 당시 더 억압적인 자세로 밀어붙였더라면 오히려 더 삐뚤어져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넜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다시 잘 돌아와 주었고, 이제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지 천천히 긴 호흡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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