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에서 '슈퍼스타'로
아니 언제까지 이렇게 공석으로 두실 건가요?
저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시나요?
2009년 8월의 어느 날,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사연은 이러했다.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는 마케팅/프로모션 회사로 업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건실한 회사로, 직원도 중국 지사 포함 100명 가까이 되었다. 한 팀에 5명 내외로 구성이 되어 매출 목표 20억 정도를 달성해야 했다.
당시 우리 부서에는 S 카지노 연간 대행을 담당하는 1팀과, R 자동차 회사 연간 대행을 담당하는 2팀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나는 2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지만, 하필 R 자동차사가 그해 연비 조작과 관련한 구설수에 휘말려 아무런 마케팅 활동이 없어 팀 매출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반면 1팀 S 카지노는 연 30억 매출이 보장된 팀이어서 나름 부러움의 대상이자, 치욕스러운 비교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갑작스레 1팀의 팀장님이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한다고 선언하는 일이 발생했다. 회사에서는 갑작스레 공석이 된 1팀의 팀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사내 다른 팀장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S 카지노의 총괄 담당자는 성격이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팀장의 교체에 회사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담당 팀장이 퇴사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후임을 정해주지 않자 S 카지노 담당자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나는 공석이 된 그 옆자리에 늘 앉아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후보군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경력직으로 회사에 들어온 지 4년이 되었음에도 한 번도 존재감을 내보인 적이 없어서 나를 후보로 올리지 않을 것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4~5명의 팀장이 후보에 올랐다. 다들 30억 매출이 보장된 꿀보직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번 후보는 몇 년 전 함께 했던 프로젝트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기에 퇴짜를 맞았다네. 2번 후보는 성격이 괴팍하기로 업계에 소문이 파다하여 딱지를 맞았다네. 3번 후보는 나이가 너무 어린 팀장이라 신뢰감을 주지 못해 또 딱지를 맞았다네. 4~5번 후보는 그냥 인상이 별로라 거절을 당했다네. 그렇다면 회사에서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후보군에 올랐던 5명의 후보가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탈락하자, 회사는 그제서야 마지못해 다음 후보로 나를 내세웠다. 내가 워낙 회사 내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지라 회사는 나를 물가에 보내 놓은 애기 마냥 불안해했다. 사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쟁쟁한 후보들이 다 탈락을 했는데 나야말로 가자마자 탈탈 털리고 돌아오겠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는 처음 미팅을 하러 가기 전에 S 카지노 담당자에 대한 사전 조사를 했다. 나이는 나보다 5살이나 많은데, 성격은 꼬장꼬장 하고, 술을 전혀 마시지 않으며,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고, 진보 진영의 성향을 가진 사람. 대충 이 정도의 조사를 가지고 미팅을 갔다.
첫 미팅에서는 최대한 아는 척을 피했다. 우리 직원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 있는데, 내가 나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인자한 미소를 띠며 회의 내용을 경청했다. 그리고 저녁에 회식자리로 가서는 그 담당자 옆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나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 안 마시는 사람이 제일 꼴 보기 싫은 게 술 마신 사람이 꼬장 부리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일단 첫날은 잘 넘어간 듯했다. 다른 팀장 데려오라는 말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 이후에도 꾸준히 미팅에 참석하고, 미팅 이후에 따로 차 한잔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 소문대로 성격은 정말 꼬장꼬장했다. 우리 업계에서 같은 일을 하다가 S 카지노로 시험 봐서 들어간 사람이라 일단 우리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괜한 아는 척을 하면 오히려 나에게 손해였다.
첫 호감을 쌓았으니 이제 나의 장점을 보여줄 때가 왔다. S 카지노는 한국 관광 공사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모든 비용에 대한 증빙 절차를 거쳐야 했다. 나는 숫자에 강한 사람이다. 회사 내에서도 재무팀보다 나에게 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건당 4~5억 / 연간 30억 규모의 정산은 나에게 정말 쉬운 일이었다. 그 담당자는 항상 정산 때문에 골치를 썩었는데, 우리가 알아서 '착착착' 해오니 자신의 일이 덜어져 매우 좋아했고, 본격적으로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면서 주로 커피를 마시거나 모둠회+사이다 조합의 회식을 즐겼다. 한 번은 횟집에서의 1차를 마치고, 인근 커피숍에서 2차로, 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집 근처 던킨에서 3차로 커피와 도넛까지, 장장 6시간의 노알콜 토크쇼를 펼친 적도 있었다. 단 둘이서. 대화의 내용은 대부분 사는 얘기, 책 얘기, 정치 얘기 등등 시시콜콜한 주제들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은 나도 원래 일본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작가 소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분은 내 독서량의 한 10배는 되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다음 책을 추천해달라 하면 너무 기뻐하면서 책 소개를 한다. 그럼 나는 꼭 그 책을 사서 읽고 다음에 만나서 후기를 말하면 또 너무 좋아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2009년-2010년 2년간의 연간 대행을 마치고 2011년에는 우리 회사가 연간 대행 입찰에 떨어져 더 이상 업무적으로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며 만남을 이어왔다. 만날 때마다 새로 대행을 맡은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회사가 우리보다 더 잘하면 괜히 질투가 났을 텐데, 천만다행이었다.
S 카지노 연간 대행을 그만하게 된 지 벌써 1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회사를 2번이나 옮기고, 결국 창업까지 했다. 그리고 회사가 짧은 고비의 시간을 이겨내고, 빠르게 성장해서 멋진 사옥까지 갖게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여러 번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나눴다. 가장 최근에 만났을 때 우리 회사가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고, 사옥까지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불과 십여 년 전, 나는 회사에서 존재감도 없는 투명인간과 같은 인물이었다. 특출 나게 문서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프레젠테이션을 화려하게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술도 잘 마시고, 영업도 잘하면서 관계를 잘 이어가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기회가 많이 오지 않았다. 중요한 일은 대부분 다른 팀장들에게 주어졌고, 덜 중요하거나 소위 짜친 일들이 우리 팀의 몫이었다.
그렇게 미운 오리 새끼 마냥 소외받고, 무시당하던 시절에 나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버텨냈을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지는 일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실 내가 S 카지노 담당 팀장으로 정해졌을 때, 주변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운 좋게 큰 거 하나 얻어걸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회사를 옮겨서 전체 20명의 직원들을 총괄하는 부장으로 있을 때도, 누구하나 높게 평가해 주지 않았다. 누구나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직원들이 잘해서 된 거지 내가 잘해서 된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내가 창업을 하며 회사를 떠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직 관리는 개판이 되고, 서로 총구를 겨누며 내부 싸움터가 되고, 클라이언트는 떠나가고, 매출은 현격히 줄어들고, 협력사 비용 지급은 무한정 연기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 존재감도 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미운 오리 새끼'인 나 하나 빠졌을 뿐인데. 그 역시도 우연이겠지.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카리스마도 없고, 추진력도 없고, 영업력도 없는 내가 과연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좋은 의미의 걱정도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 방식대로 했다. 회사를 시작하면서부터 허접하나마 시스템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주어진 기회는 크기를 떠나서 최선을 다했고, 더 좋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지금의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그 작은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지금은 남들 부럽지 않은 회사가 됐다.
이 역시도 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운이 이 정도로 계속되면 이제는 운도 실력이라고 인정해 줄 법도 한데, 여전히 나는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는다. 그런 평가들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크게 좌우되는 일은 없다. 어차피 내 보이지 않는 노력을 애써 외면하는 이들이 하는 가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어떤 성공을 해도 늘 그렇게 나를 평가절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곳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잘 모아서 나를 믿고 따라주는 사람들에게 쏟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이 '미운 오리 새끼'는 그냥 그렇게 똑같이 살아갈 것이다. 남들이 '닭'으로 봐주던, '오리'로 봐주던 '백조'로 봐주던 관계없다. 화려하게 날갯짓을 하며, 날고 싶다는 허망한 욕망을 가지지 않고 현재의 나에게 충실한 '오리', 현재의 내 가족과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오리'여도 나는 충분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