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폰'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싶다
Truedepth 카메라에 문제가 감지되었습니다.
Face ID가 비활성화되었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어떤 상황이던 빠르게 적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 번 적응되면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어언 10여 년 째인데, 매번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기술이 탑재된다. 처음에 잠시 신기해하지만, 어느새 적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2019년 초 불의의 사고로 아이폰 8 PLUS를 떠나보내고, 새롭게 맞이한 아이폰 XS. 처음 적용된 페이스 아이디가 매우 신선했다. 항상 지문이나 홍채로 인식하던 시기에 얼굴로 잠금을 해제하다니,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지만 애플만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페이스 아이디에 완전히 적응되어 있었다. 모든 금융 거래와 인증, 로그인을 페이스 아이디로 손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주 갑자기 저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어떤 어플을 켜도 'FACE ID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주거래 은행도, 증권 계좌도, 구글 로그인도, 간편 결제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페이스 아이디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긴급히 검색에 돌입했지만 모두 공식 서비스 센터에 방문하는 게 유일한 답이라 하여, 다음 날 오전에 바로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애플의 서비스 정책이야 워낙 유명하여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AS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유상 리퍼를 해야 하고, 리퍼 비용은 72만원 정도라고 했다. 출시한 지 3년이나 지난 아이폰 XS를 72만원을 주고 리퍼를 한다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이다. 당장 당근 마켓에만 가도 30만원 미만으로 괜찮은 놈을 살 수 있다.
아마도 애플의 정책이라는 것은 그런 임계점을 교묘히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돈 주고 바꿀 바엔 차라리 새 거를 사고 말지'라는 마음이 들 정도의 애매한 가격대. 나 역시도 그 설계에 설득이 되어, 어느새 1층에 마련된 애플 매장에서 새 제품을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가격대에 놀라 다시금 마음을 겨우 다잡고, 그깟 '페이스 아이디 없으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은행, 증권사, 인증 앱, 포털 등 하나하나 들어가서 페이스 아이디를 대체할 수 있는 인증 방식으로 수동 변경했다. 각 사이트 별로 대체 인증 방식이 다 달랐다. 패턴 인증, 공동 인증서 인증, 비밀번호 인증 등등. 이미 페이스 아이디에 점령당해버린 내 뇌는 모두 다른 인증 방식에 불편함을 느꼈다.
어느 순간 쿠팡에서 아이폰 12 자급제 폰 최저가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이폰 12 / 128G / 블루 103만원) 이성의 끈이 나를 몇 번이나 잡아당겼지만 나는 한사코 뿌리치고 결국 쿠팡 와우 새벽 배송으로 주문을 완료했다. 새 스마트폰을 보호할 각종 액세서리도 함께 구매한 것은 당연했다. 사용하던 아이폰 XS는 깨끗이 공장 초기화하여 둘째 아들의 손에 넘어갔다. 아이폰을 너무 쓰고 싶었던 둘째 녀석에게 페이스 아이디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이번만큼은 애플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불가항력적이었다. 삼성 갤럭시 시리즈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고, 그나마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던 LG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만약 애플의 서비스 정책이 삼성, LG급으로 친절했다면 더 흥했을까? 아니면 나쁜 남자 같은 매력이 사라져 덜 흥했을까?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정말 소비자 입장에서 애플의 서비스 정책은 WTF 임에는 틀림없다.
비즈니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거니까 언젠가 애플도 고인물이 되고, 새로운 혁신을 가진 기업이 탄생할지는 모르는 것이다. 애플의 혁신과 삼성의 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미래 혁신 기업이 탄생하길 바라며, 오늘 새로 받은 아이폰 12를 열심히 설정하고 있다. (아이폰 하나 새로 사면서, 참 혓바닥이 길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