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같지 않은 진짜 배우
모범택시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챙겨보던 중, 5화부터 시작된 '갑질 회장'에 대한 에피소드가 시작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몰입되기 시작했다. 유데이터 박양진 회장이 등장하는 신은 대단히 강렬했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라 뉴스에서 많이 보던 어떤 인물을 떠오르게 설정한 것이지만, 그런 사전 지식 없이 봐도 그 인물의 캐릭터 묘사는 정말 신선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처음으로 드라마 리뷰를 한 번 적어 본다.
그의 연기는 정말 탁월하다 못해 실제 인물 그 자체였다. 주연 배우인 이제훈도 연기라면 어디서 안 빠지는 편인데, 투샷에서 백현진의 연기는 이제훈을 완전히 압도했다. 사실 연기라기보다는 그냥 현실에서 툭 튀어나온 인물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기존의 연기 문법을 전혀 따르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랄까.
그런데 분명 무명이나 중고 신인은 아닌 것 같은, 어디서 분명히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어서 배우의 프로필을 검색해보았다. 아! 역시 익숙한 느낌은 이유가 있었다. 최근에 봤던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에서 재벌 집안의 핏줄이지만 무능력한 임원 역할로 출연했던 그 배우였던 것이다. 그때도 정말 무능력함을 온몸으로 뿜어내다가 마지막에 약간의 반전을 주는 캐릭터였다.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연기의 호흡이나 방식이 전혀 본 적이 없던 스타일이다. 너무 호기심이 나서 프로필을 좀 더 파보았더니 대중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이 두 작품이고, 원래 직업은 무려 홍대 인디신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어어부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멤버이다. 나는 이 밴드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꽤나 이름을 날리던 음악인이자, 예술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의 공연 퍼포먼스 또한 일반적이지 않아서 자조적인 약장수의 느낌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배우 백현진의 연기는 정식으로 배운 배우의 정교한 감정연기가 아니라 예술가의 자유로운 퍼포먼스에 가깝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연기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완전 새롭고,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문득 가수 출신 연기자인 산울림 김창완 배우가 오버랩된다.
처음 그가 박양진 회장 역할을 맡았을 때, 실제 인물의 캐릭터를 분석하기 위해 공개된 실제 영상들을 보다가 너무 끔찍해서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헤어스타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자신이 캐릭터를 연구하여 만들어 낸 인물이지만, 최대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의 시도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박양진 회장은 실제 본인을 데려오면 어떡하냐?"는 웃지 못할 반응도 있었을 정도이다.
백현진은 조금 전에 언급한 대로 홍대 인디 밴드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홍익대학교 조소학과를 졸업했고, 설치 미술과 회화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2017년 국립현대무실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배우이지만 단편영화 <디 엔드>와 <영원한 농담>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올해에도 백현진은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 <비밀의 숲> 안길호 피디가 연출하는 드라마 <해피니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독립영화 <십개월> 등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그밖에 가수로서도, 미술 작가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는 진정한 다중 캐릭터이다.
드라마 <모범택시>로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배우이자 가수이자 작가인 백현진의 행보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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