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Jan 19. 2022

중소기업, <극한의 징검다리>

매일매일 선택의 연속인 중소기업인의 삶

출처 : NETFLIX <오징어 게임>

얼마 전 지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우리 중소기업의 삶이 마치 <오징어 게임>의 '징검다리 건너기'와 비슷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매우 공감이 되었다. 창업을 결심하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이고,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껏 해온 모든 것들이 일순간 무너지며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두 눈 부릅뜨고 세상을 직시하며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장사던 사업이던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시작하면 일단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한다. 한 번 실수하여 사업이나 가게를 접게 된다면 막대한 손해와 함께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실패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대출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인 관계들마저 자연스레 끊기게 된다. 2번의 찬스를 잡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이다. 간혹 운 좋게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성공한 역전의 용사에 관한 사례를 접하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순히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를 선택하는 '징검다리' 미션조차도 1번일 때는 50% 이지만 2번이면 25%, 3번이면 12.5%... 10번째 징검다리에서는 1/1024로 0.19%. 10,000명이 도전하면 19명이 살아남는 확률이 된다.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1만 명 중, 무려 9981명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녀석은 오른쪽 vs 왼쪽, 홀 vs 짝, 앞면 vs 뒷면과 같이 2지선다 문제가 아니라 수십수백 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훌륭한 다리를 수십수백번 선택해야 하는 그야말로 극한의 미션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설마 죽을 때가 되었나?)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흔하디 흔한 타임슬립 드라마 주인공의 마음으로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들을 돌이켜보고 있다. 2022년은 나의 또 다른 선택의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내가 한 선택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 생각하니 몸속 모든 세포가 초긴장상태에 돌입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좋은 결정을 하겠지만 쉬운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 첫 번째 징검다리 : 홍익대학교 불어불문과

대학 입시에 한 번 실패하고, 재수생의 신분으로 본 두 번째 수능시험에서도 굉장히 어중간한 점수가 나왔다. 마지막 보험으로 지원한 홍익대학교 불어불문과에서조차 정원 33명에 예비합격 66번을 받았다. 3수를 준비해야 하나, 전문대를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극적으로 막차를 타고 입학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들어간 학교에서 나는 운명의 귀인을 만나게 되었다. 20여 년간 나의 정신적인 지주로 활동하신 A 선배님. 졸업 후에도 그분을 따라 이쪽 업계로 취업을 하여 현재 20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으니 현재의 내가 있도록 만들어 준 결정적인 은인이라 할 수 있겠다. 


* 두 번째 징검다리 : 만화방 창업

무슨 바람에서인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라면가게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를 알아보았으나 너무 비싼 보증금과 권리금, 임대료로 결국 홍대 라면 가게를 포기하고 대신 홍제에서 만화가게를 시작했다. 영업시간이 길다 보니 출퇴근에 부담이 되어 가게 인근으로 이사를 하였으나 집주인 할머니와 여러 가지 문제로 대판 싸우게 되면서 결국 3개월 만에 그 집을 나와서 홧김에 거금 5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21평 창동 주공아파트를 매입하게 되었고, 만화가게는 곧 폐업에 들어갔다. 투자금액이 워낙 적어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았고, 바로 회사에 재취업을 했다. 10년 후 그 주공아파트를 매도하고 현재의 30평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고, 그 30평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만화방은 나에게 약간의 경제적 손실을 주었으나 엄청난 기회의 시작이 꿈틀댔던 곳이기도 했다. 


* 세 번째 징검다리 : 연OOO 기획

만화가게를 정리하고 입사한 곳은 바로 이벤트 업계의 전설 '연OOO 기획'이다. 나의 정신적 지주인 A 선배님이 이 회사로 스카우트가 되면서, 만화방 폐업 후 방황하는 나를 '끼워 팔기'로 데려간 것이다. 업계 1위 기업이었기 때문에 들어오기 대단히 어려운 회사였지만, 정말 운과 타이밍으로 손쉽게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다녀보는 큰 회사에서 정말 많은 좌절과 번민을 경험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기회와 경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에서 만났던 많은 인연들과 현재까지도 함께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 네 번째 징검다리 : 지O컴

연OOO기획에서 1개 본부 20명이 자회사 개념으로 분리 독립하였다. 나는 주저 없이 창단 멤버로 합류하였다. 기존에 해오던 업무를 유지하면서 우리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도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합류했고,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런칭과 함께 처음 2년은 많은 기회와 훌륭한 성과를 내면서 승승장구했다. 즐겁게 일하면서 놀라운 성장까지 한다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경험한 순간이었다. 


* 다섯 번째 징검다리 : Connect to the NEXT 커넥스트

시간이 지나면서 그 즐거웠던 회사의 모습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 성과가 직원들에게까지 나눠지지 않았다. 특정인들의 급여와 혜택은 높아졌지만, 다수의 직원들에게는 큰 베네핏이 없었다. 기존 회사들이 늘 반복해오던 악습의 답습이었다. 의견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회사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급여를 많이 받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지만 어쩐지 그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던 중 BR 친구 녀석의 사업 제의가 있었고, 나는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내 회사를 운영해보는 쪽을 선택했다. 함께 일하던 후배들 중 마음이 맞는 직원 2명과 함께 모든 세팅을 마친 후에서야 BR 친구 녀석의 투자 계획 철회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일단 시작 버튼을 누르고,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다 폭파한 뒤였기에 되돌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대출 한도가 1억밖에 남지 않은 아파트를 담보로 하여 불안한 출발을 시작하였다. (창업의 풀 스토리가 혹시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zinzery/110 을 클릭해주세요)


* 여섯 번째 징검다리 : B社와의 만남

누구의 처음이 다 그렇듯 우리의 처음은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일은 많았지만 가난했고, 바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국민 MC 유재석의 기도처럼 매일 밤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신다면 절대로 이 기회가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모두의 도움을 잘 된 것이라고 가슴에 새기며, 단 한 번이라도 교만한 마음을 가진다면 모든 것을 가져가도 절대 원망하지 않겠다'라고 기도를 했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상처뿐인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굶주리며 기회를 기다려오던 우리는 B를 만났다. 전 연OOO 기획에서 함께 근무하던 후배 C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이고, 처음에는 우리에게 아주 작은 기회를 제공했다.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기회일지 계륵 일지 모르는 그 일을 덥석 물었다. 큰 일, 작은 일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우리는 바쁜 와중에서도 그 일을 성실하게 완수하였고 서로에 대한 작은 신뢰를 쌓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기존에 해오던 일을 다 포기해도 될 만큼 많은 물량의 일을 B로부터 수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회사는 성장하고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도 높았다. 갑을 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친절한 사람들과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를 통해 회사는 단번에 초고속 성장하며, 홍대에 조그만 사옥까지 마련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회사가 되었다. 


* 일곱 번째 징검다리 : 코로나 19

끝을 모르고 성장하던 회사는 코로나 19 한 방에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평소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성격 탓에 그동안 벌었던 수익들을 직원들 인센티브와 복지에 투자하고 남은 비용들로 사옥을 마련한 터였다. 은행과의 신뢰를 잘 쌓아 놓은 덕에 코로나 시국에도 사옥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8개월 넘게 일이 없었음에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버티다 보니 연말에 B와 함께 또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은 금액이나마 고생한 직원들에게 격려금도 지급하는 등 함께 위기를 극복해 준 직원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2021년에는 여전히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그 와중에 게임 산업은 오히려 몇 배 성장했다. 더불어 우리도 2021년에 다양한 이스포츠 행사를 통해 2019년만큼은 아니지만 70% 이상 회복할 수 있었다. 코로나는 우리 모두의 삶을 심각하게 훼손했지만 그에 따른 반대급부도 있게 마련인데, 다행히 우리에게 그 기회가 주어져 이 힘든 시기를 씩씩하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 


* 여덟 번째 징검다리 : 2022년 이후 우리 회사의 미래

회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주변 사람들은 내게 사서 쓸데없는 걱정 좀 그만하라고 충고를 하곤 했다. 항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고민이 쓸데없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지만 그들은 잘 모를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극한의 징검다리를 하나 건널 때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성찰이 있었는지를... 그 덕에 여기까지 무사히 살아서 건너왔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서 고민을 한다. 


2017년까지의 우리는 꿈을 꾸는 시기였고, 2019년까지의 우리는 꿈을 실현한 시기였으며, 2021년까지의 우리는 좌절을 극복하는 시기였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듯, 2022년 이후의 우리는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잘 돌아갈 리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엔 의미 있는 고민들을 끊임없이 해야 하고, 가장 정답에 가까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17년의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듯, 2019년의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듯, 2021년의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듯 또 2년 뒤인 2023년에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그림이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최고의 선택을 통해 또 징검다리 한 단계를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건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한 번 떨어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그 위험천만한 징검다리를 오늘도 선택해야 하고, 과감히 발을 뻗어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부로 고개 쳐들지 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