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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Mar 12. 2022

재무형 CEO vs 실무형 CEO

스타트업에 가장 알맞은 CEO의 유형은?

대부분의 회사는 대표자의 성향과 경험치에 따라 크게 성격이 규정되기 마련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리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과연 어떤 유형의 CEO가 좋은 것일까? 회사의 업종에 따라 굉장히 주관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일반적인 사례를 통해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 재무형 CEO

예전 100명 규모의 중소기업에 근무하던 중, 회사가 조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자 당시 근무하던 직원들이 삼삼오오 나와서 자회사 형태로 독립하게 되었다. 기존 회사가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이다 보니 출신 직원들이 만든 회사는 여러 가지로 후광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중 모회사에서 재무이사로 있던 분을 대표자로 해서 출범한 회사가 있었다. 아무래도 주 업무가 재무 관련 일이었다 보니 현업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모회사에서 함께 근무했을 당시에도 현업과 재무는 항상 부딪힐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현업은 돈을 벌면서 또 돈을 써야 하는 입장이고, 재무는 타이트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서로 상충된 입장이기에 불가피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재무형 CEO 혹은 재무 관련 업무 출신 CEO의 경우 모든 경우를 재무와 관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투입 대비 수익률이나 자금 회전율 등 숫자적인 부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기회나 영업적인 측면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더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한 영업 행위를 불필요한 비용 지출로 인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회사의 재무적인 안정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무의 건전성만 고려하다가 결국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회사의 중요한 성장 동력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회사를 시작하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특히나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공격적으로 기회를 찾는 것이 옳은 경우가 많다. 특히 현업과 실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재무형 CEO의 경우는 그 투자의 기회가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현업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갈등을 겪게 되거나 혹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실무형 CEO

100명 중소기업에서 독립한 또 다른 자회사의 경우에는 현업 직원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보통 현업 직원들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정산이라던지 매출/매입과 같은 소극적 재무 행위를 하기는 했으나 전체적인 재무 구조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단지 매입과 매출만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세부 항목들이 존재하지만 현업을 하는 사람은 숨겨진 운영 비용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보통 큰 조직에 속해 있다 보면 재무팀에서 그런 부분을 알아서 체크하게 되지만 소규모 조직에서는 그런 비용들에 대해 간과하다가 정작 중요한 시기에 자금이 부족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업을 주로 해오던 CEO의 경우 재무적인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아이디어는 번뜩이고, 엄청난 영업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뭔가 대단히 진취적이고, 공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상처뿐인 영광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100원 벌어서 110원 까먹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분명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관리 실패로 재무 상태가 엉망이 되어있을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금 조금 손해를 보고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영업 결과들이 결실을 맺으며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모른 채 '잘 되겠지' 하며 어물쩡 넘어가기 마련이다. 사실 무엇을 점검하고 재정비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단언컨대 이런 경우 매출이 올라가고, 직원이 더 늘어날수록 손실의 규모가 더 커질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초기 설계가 없이 얼기설기 지어진 집은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 혼합형 CEO (재무형 + 실무형)

사실 이제부터는 바로 내 얘기이다. 나는 기존 100명의 회사를 다닐 때는 그냥 숫자에 좀 관심이 많은 평범한 실무자이자 중간 관리자에 불과했다. 그러다 20명이 자회사로 독립을 하며 상급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실무를 직접 진행하면서도 회사의 다양한 재무와 운영 등에 깊게 관여하였다. 사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스스로 찾아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의 업무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갑작스럽게 창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직원은 단 3명, 자본금은 아파트 대출로 받은 1억이 전부였다. 급하게 시작하긴 했지만 나는 1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어떻게 분배해서 자금을 사용해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쪼갰다. 운영비도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혹시 모를 예비비도 매월 감안한 상태로 계획을 세웠다. 매출과 매입을 어느 정도로 맞춰야 손해를 보더라도 회사를 얼마나 더 끌고 갈 수 있는지, 만약 급한 프로젝트로 자금이 필요할 경우 어떤 경로로 자금을 확보할 것인지, 회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엄청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나만의 방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행복 회로도 조금 돌려보고, 불행 회로도 돌려보고 하면서 양쪽의 경우를 모두 고려하는 것이 나의 주요 일과였다. 직전 직장에서의 셀프로 쌓은 간접 경영 경험이 현실 경영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일이라는 게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칠 정도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놔서인지 사업 초기 큰 위기가 와도 적당히 고생하며 넘길 수 있었다. 또 일이 좀 잘 풀려 재무 상황이 개선되었을 때 이익금의 적절한 분배를 통해 완급을 조절했다. 가장 먼저 지난 부채를 일부분 갚고,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고, 미래를 위한 잉여 자금을 남겨 놓았다. 그런 전체적인 밸런스가 한 번 맞아 돌아가기 시작하니 일이 더 잘 풀리기 시작했고 다음 해 더 큰 매출과 이익을 거두게 되었다. 하지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이익금을 현재 상황에 맞게 적절히 분배하였다. 먼저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고, 내년을 위한 잉여금으로 일정 부분 적립을 하고, 남은 여유 자금으로 사옥을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다음 해 연초에 터진 코로나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때에도 우리 회사는 미리 준비해 놓은 잉여금으로 잘 버텨 가면서 결국 연말에 수행한 프로젝트로 2020년도에도 큰 손실 없이 잘 마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현업을 중심으로 해왔던 전형적인 실무형 CEO였지만 꾸준히 숫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조금씩 더 실질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재무와 실무의 밸런스를 맞춰가며 일을 해왔다. 회사의 매출이 급격하게 올라가기 전까지는 모든 재무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하면서 직접 경험을 쌓았고, 3년 차에 매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고 나서야 신입 경리를 선발해서 함께 배우면서 인수인계를 하였다. 내가 거래하고 있던 세무사 사무실과 은행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재무 관련 출신인지 항상 물어보곤 한다. 워낙 자금의 흐름이나 운영 등에 관심도 많고, 무엇보다 계산이 워낙 빠르다 보니 흔히들 오해를 한다. 


사실 회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도 내가 리더보다는 참모의 역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었다. 일단 나에게는 나폴레옹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 그렇다고 치밀한 전략가도 아니다. 뛰어난 기술자도 아니며, 엄청난 영업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막상 회사를 시작하고 보니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 오히려 회사의 운영자로서 더없이 적합한 유형이 아닌가 하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현업과 재무의 밸런스를 이해하고, 투자와 관리의 타이밍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경험치가 가장 큰 장점이다. 거기에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더해져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감히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방식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재무와 실무를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추면서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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