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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r 14. 2022

다소 황당한 층간 소음

탑층에서 겪는 우리 집 층간 소음 이야기

우리 집은 16층이다. 층간 소음의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탑층을 선택했다. 겨울엔 조금 더 춥고, 여름엔 조금 더 덥다고는 하지만 나만 조심하면 내가 층간 소음으로 고통을 받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택한 결정이다. 이사를 오던 날 아래층 할머니는 우리 집에 아들만 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하는 얼굴을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이가 뛰거나 쿵쿵대서 시끄럽게 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드렸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후 층간 소음의 상황은 정말 이상하게 흘러갔다.


일단 우리 집의 상황

우리 집에는 현재 고2, 중2의 건장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이곳에 이사 올 당시만 해도 초5, 초2였으니 한창 방방 뛰고 다닐 나이였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절대로 뛰거나 쿵쿵대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심지어 저녁시간에는 뒤꿈치를 들고 걷거나 꼭 쿠션 슬리퍼를 신고 걸으라고 할 정도로 예민하게 관리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우리 아이들이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할머니를 만나면 상당히 만족해하시며, '윗 집에 아무도 안 사는 줄 알았다'며 칭찬해주셨다고 할 정도이다. 자칭 엄청 예민하시다는 할머니에게서 합격점을 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황당한 층간 소음 1

어느 날 조용한 집 안에 쿵쿵쿵 깔깔깔 하며 아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분명 탑층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귀를 기울이며 자세히 들어보니 아래층 아이들이 이제 한창 뛰어다닐 5-6살 정도의 나이가 된 것이었고, 아래층에서 뛰는 소리가 윗 집인 우리 집에까지 그 진동과 소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래층에서의 층간 소음이란 게 보통 보복성으로 천정에 스피커를 단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집에서 뛰는 소리가 윗 집으로 전해진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해였을까 싶었지만 분명히 아랫집 건장한 따님께서 까르르까르르 웃으면 뛰어다니는 소리가 요즘에도 가끔씩 들리고, 그 집 누구도 그 아이를 말리는 사람 없이 함께 까르르까르르 신나게 웃는다. 윗 층인 우리 집에도 그렇게 크게 들리는 저 소리에 아래층인 14층은 또 얼마나 고통받고 있을지 겪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우리한테 그렇게 예민하게 굴던 그 할머니는 자신의 손녀한테는 왜 이리 관대한 것인가. 그뿐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아랫집 아이 엄마와 딸은 그렇게 목청 높여 싸운다. 단순히 싸움의 정도를 넘어서 저러다 애를 어떻게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친 사람처럼 싸운다. 나도 중2병 아들을 키워봐서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심히 걱정될 수준으로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뭘까? 분노일까? 걱정일까?


황당한 층간 소음 2

2년 전부터 우리 집에 강아지 두 마리가 함께하게 되었다. 둘 다 중형견에 속하는 닥스훈트와 웰시코기이고 완전 새끼 때부터 시작해서 현재는 몸무게가 각각 12kg, 15kg 정도이다. 소리에 예민한 아내는 당연히 초반부터 각종 매트와 카펫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많은 돈을 썼다. 우리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뛰는 행동은 철저히 못하게 막았지만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했다. 강아지들이 조금만 뛰거나 장난을 칠라치면 바로 인터폰이 날아온다. 어쨌든 우리 강아지들이 뛴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 아이들이 뛰는 수준에 비하면 비교할 정도도 아닌데,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가족이다.  


가장 황당한 층간 소음 3

어느 주말 저녁 9시에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feel 받아서 디지털 피아노를 열었다. 저녁 시간이니만큼 이어폰을 꽂고 나 혼자만의 연주에 몰입되어 열심히 치고 있는데, 아내가 화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피아노를 그만치라고 했다. 분명 이어폰은 제대로 연결되어 있었고, 소리라고는 고작 건반을 누르는 정도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뭘 두드리는지 알 수는 없었겠지만 계속해서 뭘 두드리는 소리에 인터폰을 했다고 했고 그것은 변명의 여지도 없이 내가 디지털 피아노 건반을 무음으로 두드린 소리가 맞다. 만약 그 인터폰을 내가 받았다면 진짜 바로 한마디 쏘아붙였을 텐데, 아내는 그냥 듣고 알았다고만 했다 한다. 연주의 즐거웠던 기분이 싹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분노가 대신했다.




그밖에도 우리는 그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아침을 준비하면서 믹서기를 돌린다던지, 주말 오전에 청소기를 돌린다던지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면서 일정 정도의 소음은 나게 마련이고, 이웃 간에 어느 정도의 소음은 최대한 이해하는 게 맞다. 그 적정선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관계에 따라 주관적으로 변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배려하는 우리 가족의 노력과는 달리 아래층의 예민함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사실 나의 인내심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쉽게 끓고 쉽게 식는 성격이라 욱하는 성질이 있지만 오로지 아내의 의견에 따라 그냥 계속해서 참고 있을 것이다. 자꾸 저런 식으로 예의에 어긋나거나 도를 넘어서는 예민함을 표출할 경우 나도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본격적인 위층 '갑질'을 할 수도 있다. 부디 내 인내심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층간소음 #보복소음 #층간 #아파트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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