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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31. 2022

한 때 잘 나갔던 사람

내가 제일 잘 나가 (옛날에)

우리는 주변에서, 혹은 TV에서 한 때 너무 잘 나갔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높은 확률로 그 시절을 소환하며 현재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누군지 알어?" "내가 왕년에 말이야" 이런 말들은 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야"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과거의 화려했던 삶에서 아직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아마 어떤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 그럴 것이다. 최고에서 현재의 자리까지 떨어지게 된 데에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여러 사연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재의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시늉을 하겠지만 마음속으로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 소박한 몇 가지 꿈 중 하나가 바로 나중에 남들에게 "나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야"라는 소리 안 하고 사는 것이다. 내가 만약 아무것도 없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 역시도 그때만 회상하며 "그때 이랬어야 하는데..."만 반복하며 후회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두 번째의 삶이 더 힘든 이유는 그 자리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아예 맨바닥일 때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어떤 굴욕과 고통도 다 참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성되기 마련이지만, 한 번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게 되면 다시 그 과정을 견딜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지금의 내가 현재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여러 차례 글로 소개를 한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험난한 과정이 있었듯 나도 그 수모와 조롱과 고난을 견디고 현재의 자리에 간신히 이르게 되었다. 남들에 비하면 엄청난 행운이 따라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지금의 자리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이다. 뭐 대단한 자리에 오른 것처럼 흥청망청,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 등 돈이 많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지만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진 또 하나의 작은 목표는 우리가 함께 이룬 회사의 성장을 후배 직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던 나눌 예정이다. 단순히 지분이나 배당 같은 건 이미 하고 있고, 그런 차원을 넘어서 회사를 통째로 후배들에게 분할하여 각자가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식당이라고 치면 가장 목 좋은 직영점을 내주는 것이 될 테고, 대기업 같은 곳에서 주로 하는 특정 분야와 파트를 떼서 물적 분할하여 신규 법인을 설립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영업처들을 현재 각자 담당하는 담당자들이 직접 회사를 설립하여 영업권을 통째로 가져가도록 할 예정이다. 


회사를 처음 함께 할 때부터 나는 딱 5년 안에 창업 멤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지금 비록 5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이제 코로나 국면을 벗어나며 겨우 자리를 공고히 잡고 있는 과정이니만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후배들에게 길을 내어줄 생각이다. 내가 여기서 더 움켜쥐고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할수록 아마도 서서히 우리는 하락세를 겪을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젊고 유능한 후배들이 새롭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가진 마지막 미션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후배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다. 지금의 자리를 아름답게 물려주고 아름다운 퇴장을 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으니 현재는 내 계획을 100%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잘 되고 있는데 왜 물려주려는 거지? 왜 자꾸 떠나려고 하는 거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뭘 떠넘기려는 걸까?" 하며 매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여러 차례 밝혔듯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다. 


나도 한 때는 엄청 잘 나갔었어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결국 다 떠나고 나만 혼자 남아서 백날 저런 얘기를 떠들어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아주 좋을 때, 잘 되고 있을 때, 더 많은 기회가 남아 있을 때 후배들에게 깔끔하게 넘겨주고 나는 2선으로 물러나 그들이 각자의 꿈과 비전을 더 키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패밀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자리를 잡으면 결국 나의 가치는 더욱더 커질 수 있음은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간혹 내 계획을 후배들에게 조금씩 꺼내 놓으면 다들 손사래를 치며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관철시킬 것이고, 그게 나와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임을 끊임없이 설득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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