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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Jul 01. 2022

도대체 적당히라는 게 없어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나란 남자. 적당히라는 게 없는 남자.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시작을 하면 결국 끝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어떤 특정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러하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항상 두렵다. 나도 내가 어디까지 갈지를 가늠할 수 없으니까.




지난 주말이었다. 갑자기 김치 냉장고에서 물이 흘러나와 이내 방안이 한강이 되었다. 아내는 자고 있던 나를 깨워 긴급히 바닥의 물기를 닦아 낸 뒤, 김치 냉장고를 꺼내서 뒤에 먼지를 털어 내자고 했다. 잠에서 덜 깬 채로 김치 냉장고를 앞으로 꺼내어 냉장고의 뒤를 보자 아연실색하게 되었다. 강아지들의 털이 환풍구를 꽉 막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1년 전에 청소를 한 거 같은데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다 보니 예전보다 먼지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진 듯하다. 어쩌겠는가.. 강아지와 함께 사는 우리의 숙명인 것을.. 그런 마음으로 냉장고 뒷면 덮개를 뒤덮고 있는 수북한 먼지 덩어리를 깨끗이 털어 내었다. 

청소할 때 미처 사진을 생각을 못 찍어, 인터넷에서 퍼온 거의 똑같은 사진
냉장고 뒷면 덮개 사이로 보인 먼지 덩어리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나


그렇게 개운한 마음으로 청소를 마치려는 순간, 나는 절대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덮개의 안쪽 깊숙한 곳과 코일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먼지 덩어리들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나는 전동 드릴을 챙겨서 덮개를 열고 온갖 도구들을 활용하여 집중 청소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만하면 됐다고 나를 만류하였지만 이미 그 더러운 안쪽을 봐버린 순간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 안쪽 구석구석에 쌓인 묵은 먼지들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닦아야 하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에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김치 냉장고의 청소를 마치고 나니 문득 양문형 냉장고의 뒷모습도 궁금해져 이번엔 커다란 냉장고를 앞으로 빼서 뒤를 보는 순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 털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김치 냉장고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의 뒤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아까 했던 것처럼 다시 조용히 먼지를 제거하고, 또 덮개를 열어 안쪽 구석까지 모두 깨끗이 먼지를 제거한 다음 청소를 끝냈다. 아내는 연신 그렇게까지 할 건 없다고 했지만 나는 시작을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발을 들여놓는 순간 끝을 봐야만 하기 때문에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땀을 뻘뻘 흘리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뒤 나는 혼자 조용히 속삭였고,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빵 터지고 말았다.


도대체 적당히라는 게 없어 진짜...


나도 내 스스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가급적 집에서 무언가에 손대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결국 손을 대면 끝을 봐야 하는, 도무지 중간이라는 게 없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 성격이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는 없다. 그냥 타고 난 성격이므로 잘 조절해가며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쩌다 한 번 시작하면 또 완전 몰입되어 빠지고 만다. 아마 내가 평생 담배를 안 피우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내가 담배를 시작했다면 누구보다 담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에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았다. 또 게임도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하는데 정말 어쩌다 한 번 시작하면 꼭 끝을 봐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시작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최근 가장 몰입하는 분야는 뭐니 뭐니 해도 투머치 토크이다. 회사에서도 어떤 직원과 소소한 사담을 나누고자  커피 한 잔 마시다가도 결국 어느 순간 혼자서 엄청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며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한 번 말을 시작하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나는 이것을 중간에 끊어낼 능력이 없다. 그런 나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상대방의 심정이 이해가 가다 보니 스스로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가급적이면 대화의 시작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밥도 가급적 혼자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가끔씩 내 얘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주고 공감대가 많은 지인들과 만날 때는 노브레이크 토크가 이어진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가급적 적게 얘기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해보지만 어느 순간 시동이 걸리면 역시 브레이크가 안 밟혀 하염없이 길어지곤 한다. 


성대결절이 시작된 이후로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해보지만 하루 이틀 조심하다가 또 폭주하곤 한다. 생각이 많아서, 그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마음이라 어제도 오늘도 폭풍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가끔 그 수다로도 성이 안차 결국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가끔 웃음이 나기도 한다. 중간이 없는 삶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누군가는 나에게 극단적이라며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 어정쩡한 태도가 나의 가치관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현재 나의 삶의 방식을 앞으로도 쭉 고수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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