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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Sep 15. 2022

지나친 배려가 빚어낸 참극

실화를 바탕으로 한 <숏편 소설> 001

창범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일행들에게 얘기도 없이 혼자 대리 운전기사를 불러 버렸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대리 기사는 의외로 금방 잡혔고,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겠다는 짧은 인사를 남긴 채 휭~하니 사라져 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뭔가 큰일이 생겼나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유를 캐물을 시간도 없이 가버렸기에 그저 궁금한 마음을 가진 채 다시 하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날 새벽부터 골프를 함께 치고 난 뒤 일행 중 1명은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일어났고, 창범과 진혁 그리고 이대표는 자주 가는 장어구이집을 찾았다. 세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기엔 조금 복잡하나 여튼 동종 업계에서 함께 일을 하며 친분을 쌓은 관계이다. 골프 뒤에 먹는 장어는 정말 보약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장어와 함께 소맥을 먹으며 즐거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그날따라 유난히 창범의 전화기는 불이 날 지경이었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카톡으로 자주 자리를 비웠고, 이대표와 진혁은 바쁜 일이 있는가 보다 하며 둘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술이 서서히 올라오던 중 이대표와 진혁은 잠시 담배 타임을 가지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왔고 창범은 여전히 누군가와 목소리를 높여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대표와 진혁은 그런 창범을 보며 걱정스러워했다.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마음에 일단 모른 체하고 둘만의 담배 타임을 가졌다. 창범은 전화를 하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이대표와 진혁은 밖에서 약 1시간 가까이 담배 타임 + 취중 토크를 이어나갔다. 보통 같으면 창범이 중간중간 나와서 담배 타임에 동참할 법도 한데, 1시간 가까이 나오지 않아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창범이 매우 신경이 쓰였지만 방해하지 않기 위해 테라스에 머물며 창범의 동태를 살폈다. 


시간이 너무 길어져 이대표와 진혁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창범은 이미 대리 운전을 호출한 상태였고, 두 사람은 정말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싶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창범이 떠나고 둘은 자리를 옮겨 한참을 더 함께 있다가 느지막이 헤어졌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진혁은 창범에게서 한 통의 카톡을 받았다. "야이씨, 둘이 할 얘기 많음 둘이 만나서 하지, 한 시간 가까이 혼자 멍타게 해" 진혁은 카톡을 보고 나서야 뭔가 일이 잘 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범에게 전화를 했지만 창범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전화 달라는 카톡을 남겼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진혁은 생각했다. '아.. 또 서로의 과도한 배려로 인해 엄청난 오해가 생겼구나.' 빨리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창범은 좀처럼 답변을 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답이 없자 진혁은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결론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다 보니 서로를 오해한 셈이 되었고, 그 카톡을 보고 나서야 창범은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창범의 입장에서는 둘이서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배려 차원에서 자리를 비켜준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오해가 풀리자 진혁은 창범에게 전화를 걸었고, 하루 만에 통화가 된 창범은 머쓱해했다. 그리고는 또 30분가량 이런저런 잡담을 늘어놓으며 성대에서 쇳소리가 나려고 할 때쯤 간신히 전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평소 편한 사이일수록 더 배려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던 진혁이었지만 상대방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배려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 곤란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앞으로도 더 열심히 배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설령 이번 경우처럼 그런 오해를 받을지언정 그것이 두려워 배려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보다 더 상대방의 상황이나 마음을 살펴가면서..


#배려 #투머치배려 #예의 #친절 #관심 #사회생활 #중소기업 #창업 #삐돌이

이미지 출처 : 도서 <남녀의 대화는 통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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