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삼라만상이 다 스승이다
회사를 6년째 운영하다보니 면접과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레퍼런스도 많이 부족하고 규모도 매우 작았을 당시 면접에 오기로 했던 10명 중 무려 9명이 노쇼(no-show)를 했던 경험부터, 정말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짐하고 출근한 지 2-3일 만에 다른 회사 합격했다며 떠나가던 신입 직원까지,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서러운 경험들로 가득했다. 어느 회사나 그렇듯 작은 회사일수록 비슷한 경험들이 많을 것이고, 아마 대부분 좋은 기억보다는 아픈 기억에 가까울 것이다.
어느덧 우리 회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회사이다 보니 면접에 대한 서러움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이스포츠에 관심 많은 친구들이 우리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음알음 많이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보다 많은 지원자들이 올라오고, 그중에서 최상의 지원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우리 회사의 면접은 압박보다는 릴랙스 한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짧은 시간의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진면목을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최대한 듣기 위함이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먼저 회사에 대한 소개를 하고, 면접자의 이력에 대한 가벼운 질문들 위주로 던지며 warm-up 할 시간을 준다. 말을 화려하게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하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경청하며 지원자의 인사이트를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오늘도 역시 사설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최근에 우리 회사에서 신규 프로젝트 사업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인원 채용을 위해 공고를 올렸다. 감사하게도 많은 수의 지원자가 있었고 그중 1차 서류 심사를 거쳐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30분 터울로 5~6명의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중 한 여성 면접자(A)와 면접을 진행하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과 포부를 조곤조곤 잘 풀어내어 높은 호감도를 갖게 되었다. 다소 예민할 수도 있는 질문에도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변을 막힘없이 해주어 마음속으로 최고점을 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30분의 면접이 훈훈하게 잘 마무리되고, 마지막으로 궁금하신 거나 질문이 있으면 해 보라는 의례적인 멘트를 던졌는데, A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나를 너무 당황하게 만들었다.
"회사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이 언제셨나요?"
면접자들에게 마지막 질문 기회를 주면 보통은 출근 시간이나 급여일, 휴무, 식대 등 신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A의 질문은 정말 나의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고, 이미 면접 시간이 지나버려 다음 면접자가 기다리는 상황에 '과연 내가 이걸 짧게 정리하여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심리적 압박감이 들 정도로 나는 진심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그 순간을 떠올리고, 요약해서, 조리 있게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이 나에게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시간이 충분했다면 나는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문제였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면접자에게서, 그것도 마지막 형식적 질문의 순간에 이런 철학적이고 근원적 질문을 받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가 회사를 처음 만들면서 다른 회사와는 다른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에 있는 비전을 보고 천천히 걸어가겠노라고 다짐했었습니다. 돈이 없던 시절부터 지금의 안정적인 회사에 이르기까지 그 기본적인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잘 지켜오고 있습니다. 돈보다는 주변의 사람들을 잘 살피며 오다 보니 결국 그 과정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 옆을 지켜주고, 응원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 오늘의 영광스러운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코로나 시국에서도 든든히 버텨내고, 월급 한 번 밀리는 일 없이 매년 남들보다 많은 금액의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이 현실이 저는 항상 감사하고, 보람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 얘기는 더 많지만 시간 관계상 여기서 줄이도록 하고, 혹시 만에 하나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브런치에서 저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 정말 뜻밖의 좋은 질문 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꼭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설명을 했지만, A의 질문에 적절한 답변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직원이 면접장을 나서자마자 나는 큰 소리로 합격을 외쳤고, 다른 면접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아직 출근 전이라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사람의 전부를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A의 그 신선하고도 경이롭기까지 한 그 질문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내가 똑같이 면접관들 앞에 섰을 때 나는 저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자신의 신상이나 근태와 같은 개인적인 질문이 아닌 회사의 운영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삼라 만물이 스승님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날 그 질문 하나에 참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결코 어리석은 게 아니며,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현명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깨우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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