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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Oct 31. 2022

분노 조절 잘해

쉽게 분노하고, 쉽게 가라앉는 요즘 나의 심리 상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나는 20년간 일을 하면서 주변 동료나 협력사, 클라이언트 등에게 화를 낸 경우가 손에 꼽힐 정도로 분노 조절을 잘 해왔다. 내가 정말 분노 조절을 잘하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화를 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집에서 아이들에게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분노 조절을 잘하는 건 아닌 듯하다. 아무리 신입 직원이라 할지라도 다 큰 성인인데, 내가 화를 낸다고 갑자기 일을 잘하게 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대한 화보다는 대화나 설명을 통해서 업무를 지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런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전형적인 '분노 조절 잘해' 타입인 내가 최근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닐까 의심될 만큼 갑작스럽게 화가 많아졌다. 몇 년째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지난 시간 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잦은 분노로 주변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 분노의 대상은 우리 직원들이 아니라 외부를 향한 경우가 많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타이트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는 상황에서 자꾸 힘 빠지게 하는 멘트로 기를 꺾어 놓기 일쑤이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예산은 점점 타이트해지고, 물가는 점점 올라가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의무만 점점 늘어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미친 듯이 준비하고, 계획해도 정작 현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지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작은 실수에는 엄청난 질책과 비난으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매출은 전년대비 늘었지만 수익성이 매우 악화되어 올해는 특히 연간 영업이익이 손실이 날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작한 이상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직원이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버티고 있으나 한계가 느껴진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 클라이언트로부터 선금을 받기 전에 전체 예산의 1/3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해야만 한다. 회사의 자체 자산과 각종 대출 등을 총동원하여 총 23억원의 비용을 쏟아 부었다. 그 23억이 거의 소진되어 갈 시점에 선금이 들어와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23억이라는 돈이 말이 쉽지 웬만한 중소기업에서 이 큰 자금을 사전에 투입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특히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연이율 5%을 기준으로 23억의 1개월 이자만 무려 1,000만원에 이른다. 이제는 이런 거액의 초기 투자비용이 당연해졌다. 이자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고충에 대한 이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굳이 오버해서 생각해보자면 이런 큰 프로젝트를 하려면 이 정도 투자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나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지금껏 우리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몇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었다. ① 프로젝트를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경우, ② 프로젝트를 통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경우, ③ 프로젝트를 통해 좋은 레퍼런스를 쌓게 되는 경우, ④ 프로젝트를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경우 등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이 네 가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으나, 올해 들어와 급격히 프로젝트의 컨디션이 악화되었다. 저 4가지 중 단 한 가지도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그냥 당연하게 욕을 먹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원인은 돈과 시간이지만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은 우리를 향해 있다. 그러니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굳이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를 모두 상실한 상태인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그래도 프로젝트는 잘 마쳐야 했기에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사소한, 대세에 지장 없는, 아주 자잘한 비용으로 사람의 감정을 지속해서 건드리자 20년간 잘 지켜오던 분노를 기어코 터트리고 말았다. 곧바로 후회하고 사과하기는 했으나 평소의 내 스타일이라면 충분히 참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현장에서 나보다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억울해하는 수많은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돈인가? 명예인가? 경험인가? 보람인가?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고 오로지 잃을 것만 가득한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시작된지 오래고, 내가 더 이상 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단계는 한참 전에 지나가버린 듯하다. 회사의 근간은 직원인데 직원들도 나도 행복하지 않은 이 일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정말 나에게는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 계속 버티다가는 그나마 남아있던 에너지마저 고갈될 것이 분명하고 그러다 결국 하나둘씩 떠나가 버릴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이별을 맞이하겠지만, 이런 식의 이별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이별이기를 희망하기에 이대로 좀비처럼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다.


나의 분노 표출은 일종의 싸인이자, 쇼잉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터진 주제에 또 포장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외부적으로는 우리의 감정 상태를 어느 정도는 표현하여 그들이 현 상황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하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고, 내부적으로는 억울함과 부당함에 대한 직접적 표현을 함으로써 속으로 곪아 썩는 것을 아주 조금이나마 방지하기 위함이다. 너무 참기만 하다 보면 서서히 억울함이 쌓이게 되고 그것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으나 우선 단기적인 해결책도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분노 조절 잘해' 타입을 유지할 것이다.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잘하고, 화를 내지 않는다고 잘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면 애초에 나하고는 맞지 않는 유형의 사람인 것이다. 내가 정작 분노하고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이렇게 부당한 구조를 만든 사람에게 향해야지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직원들에게 향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이 나의 '분노 조절'의 명확한 기준이다. 단 한번도 어렵지 않은 프로젝트는 없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유독 난이도가 높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우리는 잘 해낼 것이고, 쿨하게 사라질 것이다.


출처 : 마블 코믹스 '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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