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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Aug 06. 2023

(강제) 묵언 수행 3일 차

말의 소중함을 몸소 깨닫는 시간

"성대에 있는 혹을 떼어내는 수술 자체는 매우 간단한 수술이에요. 5-10분이면 끝나는데, 문제는 최소 2주간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후 2주간은 예, 아니오 수준의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셔야만 빠르게 회복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술이나 자극적인 음식 등은 한동안 피해야 하고요."


청천 날벼락같은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말로 에너지를 얻는 내가 과연 2주간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말'이란 걸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음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는지 2-3분 동안 나무 의사 선생님의 눈을 피하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목안에 이런 작지만 위험한 덩어리를 안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이내 알겠다고 하고 바로 다음 주로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급히 처리해야 할 미팅들을 다 처리하고 지난 수요일에 PCR 검사, 목요일에 입원, 금요일 오전에 수술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수술 자체는 금방 끝났지만, 전신 마취를 시작하면서부터 마취가 풀리는 시간까지 약 1시간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짜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예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선 안되었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하지만 반백년 가까이 이어온 습관이 단 한순간의 마음먹기로 달라질 수 있겠는가. 병실 스피커로 "환자분" 부르면 냉큼 "네"하고 대답을 해버리고, 간호사가 "아프신 데는 없으시고요?" 하면, "네"하고 대답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소용없었고, 조금만 방심하고 있어도 대답이 술술 나왔다. 


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말을 할 때마다 목이라도 아팠다면 경각심에서라도 말을 안 할 텐데, 실제로 목소리를 내보니 목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아무런 의식 없이 자꾸 말을 내뱉는 것이다. 몇 번 정도는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갔다가 한참 뒤에 말했던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일단 집으로 와서는 다른 일상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는데, 가족들의 질문에 실수로 계속 대답을 하고 있다는 점과 의사소통이 너무 어렵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일단 집에 있는 의료용 테이프를 찾아서 입술에 붙였다. 실수로라도 몸이 반응을 하더라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을 못 하게 되어 하나의 문제는 급한 대로 해결하였다. 


의료용 테이프로 임시 입막음을 한 시뮬레이션 (실제 사진은 흉해서 안됨)

가족과의 의사소통은 키보드와 아이패드를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키보드를 들고 다니며 카톡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급한 경우 아이패드에 펜으로 글을 써서 전하기도 한다. 물론 가족들은 나에게 말로 하지만.. 


강제 묵언 수행 3일 차. 처음엔 좀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은 또 적응의 동물이라고,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런대로 적응할만하다. 앞으로 최소 10일 정도는 묵언을 해야 하고, 그 후 2주간은 최소한의 의사표현 정도만 가능하다고 하니 답답해도 잘 견뎌내야만 한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꿈 속에서도 치열하게 말하는 꿈이 자주 등장한다. 꿈 속 대화 내용도 '나는 이제 성대 수술로 말을 못하니까 전화 통화는 어렵다'는 말을 전화로 설명하고 있는 어이없는 개꿈들이다.


이제 겨우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새삼 말의 소중함에 대해 처절하게 느끼고 반성하는 중이다. 말이라는 것이 늘 나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언제나 내 옆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당연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마구 남발하여 사용하였으니 조금 쉬어가라는 경고의 의미로 브레이크를 걸어 준 게 아닐까 싶다.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좋은 생각과 좋은 글,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면서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아마 살면서 다시는 나에게 오지 않을 묵언의 기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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