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Aug 02. 2023

내 인생이 피곤한 이유.txt

나는 이상주의자 겸 현실주의자 / 양면형 인간에 대한 고찰

얼마 전 혼자 진득하게 생각할 기회가 생겨 가만히 나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쉬운 길을 두고 항상 어려운 길을 선택할까. 나는 왜 스스로를 피곤으로 몰아붙이면서까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오지랖을 끊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기에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일까. 


누구나 알고 있는, 누구나 가고 싶은, 정답에 가까운 길이 눈앞에 뻔히 보이지만 항상 나는 우회하고 때로는 역주행하며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다. 당장 오늘만 생각한다면 좀 더 쉬운 결정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남았고, 조금 더 먼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기에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나는 도대체 왜 그런 결정들을 내려서 나의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아주 오래전으로 생각이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요즘 MBTI를 보면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즉흥적이나 계획적이냐', '이성적이냐 감성적이냐'와 같이 둘 중 한 개를 선택하게 되어있지만 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 가지의 항목을 다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째로 나는 양손잡이이다. 글씨 쓰기, 밥 먹기와 같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행위들은 대부분 오른손을 쓰지만 가방매기, 짐 들기, 공차기, 바지 입기 등 남들에게 굳이 보여지지 않는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왼손과 왼발을 사용한다. 즉 추측건대 원래는 왼손잡이였지만 사회적으로 오른손을 익혀 완벽한 양손잡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젓가락질이나 당구 치기, 배드민턴 등에서 왼손이 오른손만큼이나 정확성을 가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른손이 부러져 깁스를 했던 시절에 왼손으로 젓가락질, 마우스 사용, 글씨 쓰기 등을 하며 불편하지 않게 생활했을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오른손 사용은 IQ(이성적 영역)에 왼손 사용은 EQ(감성적 영역)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양손을 골고루 사용하면서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실제로 나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지만 독학으로 음악에 대한 이론은 물론 악기도 피아노나 기타를 독학으로 배워서 어정쩡한 실력이지만 연주와 공연을 했던 이력도 있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 IQ가 155였던 것은 안비밀이다)


둘째로 나는 수학과 문학을 동시에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때 하루 공부 시간 중 90%를 수학 공부만 할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고, 고2 때 문과와 이과를 선택해야 할 시기에 망설임 없이 문과를 택했다. 이유는 문과 수학이 매우 만만했기 때문에 문과에서 수학 1등을 하고자 하는 책략을 세웠고 계획대로 나는 문과에서 수학 잘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고, 2권~3권짜리 장편소설로 시작해서 성에 차지 않아 태백산맥, 아리랑, 토지와 같은 10권 이상되는 대하소설을 두루 섭렵했다. 


나는 첫 수능 세대인데, 수학과 문학을 동시에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천금과 같은 기회가 되었다. 내신이나 학력고사와 같이 암기 위주의 시험에서는 반에서 15등(50~52명 중) 정도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수능으로 바뀌고 나서는 항상 Top 5의 성적을 내곤 했다. 단순 암기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수능에서는 나의 문학적, 수학적 사고가 융합된 복합적 사고가 엄청나게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셋째로 나는 다양한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 우선 KBS 개그 콘테스트 본선에 오를 만큼 개그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개그는 천부적인 언어적 센스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일부 존재했었고, 무대 공포증만 아니었다면 최종 본선에서도 무난히 합격했었을 것이다. 아마도 연기자가 아니라 개그 작가를 했었다면 아직도 그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개그라는 것은 단순히 웃기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은 뒤, 특정한 포인트를 살려야 공감을 얻는 개그가 탄생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와 개그를 하기도 했었고, 간간히 소규모 무대 MC를 보기도 했었다. 


20살 대학 진학 시, 점수에 맞춰 간 곳이 바로 홍대 불어불문학과이다. 사실 불어불문학과라는 곳이 그저 언어를 배우는 곳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으나, 실제로는 프랑스의 문학과 철학적 사상에 대해 연구하는 곳이었다. 불어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상과 철학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요즘 말로는 불며들었다) 게다가 불어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했던 나는 3학년 때부터 과학생회장과 각종 교내 공연이나 연극 등의 연출부를 거치면서 다양한 리더십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나의 혈액형은 A형 어머니와 B형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AB형이다. 어머니 쪽의 피를 많이 물려받아 굳이 표현하자면 Ab형이다 보니 A형과 b형의 성격을 약 7:3 정도로 소유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성향을 따라서 주변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공감 능력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아버지의 성향 중 급한 성격과 간혹 욱하는 성질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불의한 것에 대해 잘 참지 못하는 성향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대학교 때 학생에게 성희롱을 하는 교수에게 대들다가 학교를 떠날 뻔한 적도 있고, 회사에서도 협력사에게 갑질하는 후배들에게 쓴소리 했다가 갑질의 배후인 상급자들에게 집단으로 왕따를 당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나의 내면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유난히 그 반대적 성질들이 내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성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IQ(이성)과 EQ(감성)이 공존하며, 수학적 사고와 문학적 사고가 조화를 이루고, 유머와 공감 능력, 거기에 철학적 사고가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보니 오늘날 이런 내가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여러 가지 요소들 중 어떤 것이 나의 삶을 이다지도 복잡하고 피곤하게 만드는지는 사실 알 수가 없다. 혹은 모든 요소가 결합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이유로 하나의 사안에 부딪혔을 때 단순하게 빠른 결론을 내리려고 하기보단 조금 더 복잡하고, 복합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결과에 대한 즉각적 비판을 하기보다는 문제가 생긴 보다 근원적인 이유, 그리고 빠른 대처방안 등을 먼저 생각하여 해결하고 시시비비는 추후 천천히 생각하는 편이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결정을 하고, 결과적으로 그 판단이 틀렸을 경우에도 결코 후회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다시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똑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절대로 바뀌지 않을 큰 중심을 이루는 대원칙이 있고, 그 원칙들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케이스들이 있지만 대원칙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는 얼마든지 생각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 


이번에 받게 되는 성대 플립 제거 수술도 이러한 연유로 인해 생긴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냥 매사에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거나 좀 쉬운 길을 택했다면 성대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조금 돌아가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이해, 그리고 설득으로 이어지는 장시간 토크들이 이어지다 보니 성대가 결국 지쳐서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최초 연료로 시동을 걸지만, 운행을 시작하면 자가발전으로 배터리를 충전해 가면서 전기로 운행을 하는 방식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충전이 되고, 그것을 연료 삼아 더 많은 에너지를 나눠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타고난 운명인 것을...


때로는 삶의 모든 결정들을 단순화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부러울 때가 있다. 화나면 화를 내고, 좋으면 웃고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하나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고려 사항들을 따져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피곤하지만 예상하고 고민한 대로 일이 잘 정리되었을 때 오는 쾌감이 어마어마하다. 그게 그 피곤한 행위들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마약인 것이다. 


이번 수술 이후에 약 1개월간 본격적인 말하기가 금지되어 있다. 아마 그 시간 동안 나는 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글로, 메신저로, 또 새로운 배움으로 해소할 것이며 한 달 대화 금지가 해제된 이후 또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기존의 삶을 이어가려 할 것이다. 이번 한 달간의 '성대 휴가' 동안 많은 생각과 고찰을 통해서 더 복잡하고 더 피곤한 삶이 펼쳐질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수술대에 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