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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Sep 17. 2023

타발적 '아싸'로 한달 살기

강제 집콕 라이프 체험기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저 목소리가 자꾸 쉬고, 예전만큼 빠르게 회복이 되지도 않아 작년부터 이비인후과를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약을 먹었다. 그래도 성대 속 용종이 사라지지 않자 큰 병원에 가보라 하여 그저 예약을 하고 방문했을 뿐인데, 바로 그날 수술 날짜가 잡혀 버렸고 일주일 뒤 성대 플립 제거 수술에 들어갔다. 한 달 동안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실제 그때는 와닿지 않았었고, 수술 후에야 이 한 달간의 침묵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침묵은 2주간의 완전 침묵과 2주간의 부분 침묵으로 나뉜다. 완전 침묵 기간에는 '아' 하는 소리조차 내질 않아야 하며, 2주가 지난 이후에는 최소한의 의사표현만 가능했다. 완전 침묵 기간이 지나고 나자마자 예상치도 못했던 공포의 대상포진이 찾아왔다. 통증이 너무 심각해 집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집 밖에 나간다는 건 아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한 달 강제 침묵 기간은 해제가 되었으나 강제 집콕 라이프는 0.5개월 자연스레 연장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정확히 1.5개월간 타발적 '아싸'가 되었다. 매일같이 약속과 미팅과 회식과 업무로 바쁜 나날을 살던 내가 아무런 준비 과정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집돌이가 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약 20년 가까이, 아니 더 길게 보면 약 30년 가까이를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전혀 반대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는데 초기에는 엄청난 공포가 엄습했었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말도 할 수없다는 것에 쉽게 적응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래야 했다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테지만 그래도 성대 수술과 대상 포진이라는 빅이슈가 있었기에 어쩔 수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었었다.


1.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진짜 완벽한 '아싸'가 되었다. 이게 원래의 나였나 싶을 정도로 이제는 '아싸'가 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과의 소통은 온라인으로 충분히 가능했고, 오히려 피하고 싶은 통화는 자연스럽게 성대 수술과 대상포진을 핑계로 자연스레 피할 수 있다. 대상포진의 악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기에 사람들을 선택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물론 없는 통증을 있다고 속이진 않았다. 때로 그저 조금 과장했을 뿐...)


한동안 각종 매체를 통해서 'OO에서 한달살기'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나도 한때 아내와 함께 제주도 혹은 강원도 공기 좋은 시골마을에서 '한달살기'를 해보려고 여러 가지로 알아보다가 포기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 파급력이 대단했었다. 이번에 강제 집콕 한달살기를 해보니, 사람들이 왜 거기에 열광했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딘가 경치 좋은 곳에서 하면 더 의미도 있고 건강에도 좋겠지만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단절한 채 온전히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 수 있다는 점이 이 '한달살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번에 반강제적으로 내 집에서 '한달반살기'를 해보니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서야 하게 되었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만족도가 최상이다. 


물론 아프지 않은 상태로 그저 자신을 돌아보고, 건강과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만족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을 계기로 향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후, 반드시 아내와 아이들과 강아지들과 함께 멀지 않은 곳부터 차례대로 다녀볼 계획이다. 꼭 "한달살기"라는 틀에 박히지 않아도 "하루살기", "한주살기", "보름살기" 등 형식상으로는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많이 해서도 안 되는 성대의 상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소중한 일임을 깨닫는 이 "한달반살기"를 통해 강제 금주로 인한 강제 다이어트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따로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고, 그냥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고, 잘 놀았을 뿐인데 건강과 감량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역시 내 살의 주요 원인은 안주가 아니라, 술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이제 다음 주면 강제 '아싸'에서 벗어나 회사에 가서 업무도 보고, 미팅도 하는 등의 대외 활동이 시작된다. 아예 사람들을 안 만날 수는 없겠지만 건강을 핑계로 과도한 음주나 장시간 말하기 등은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는 '아싸'의 삶이 진짜 나이고, '인싸'의 삶이 가짜 나인 세상으로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기려고 한다. 진짜 나의 삶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가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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