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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Nov 22. 2023

거짓말의 법칙

거짓은 거짓을 낳고, 그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으니...

진실은 쉽고, 거짓은 어렵다.
진실은 단순하고, 거짓은 복잡하다.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진실은 꾸며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그대로 하면 된다. 반면 거짓을 말할 때는 이 거짓에 오류가 없는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체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말하면서 주저하게 되거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심문을 받을 때 거짓말 탐지기 같은 장비를 사용하면 거짓말을 단번에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그것을 만들어내는 순간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미세한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평범한 일반인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게 중에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기술을 타고난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들이 그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조금만 나쁜 길로 빠지면 바로 사기꾼의 길로 가는 것이고, 더 심각한 경우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조차 가볍게 통과해 버리는 경지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일단 생각나는 대로 지르고 보는 사람과 앞뒤 거짓말을 완벽히 컨트롤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질문이 거듭될수록 필연적으로 2차, 3차 거짓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2차 질문에서부터 바로 앞뒤가 안 맞으며 말문이 막히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3차, 4차 질문까지도 완벽하게 대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거짓말을 잘하는 것을 타고난 것일까?


사실 웃긴 얘기일 수 있지만 거짓말도 연습과 훈련에 의해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처음엔 무턱대고 지르고 보다가 여러 차례 곤란했던 경험들이 쌓이면 자연스레 다음에 해야 할 거짓말까지 미리 시나리오를 생각해 놓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경우 2단계, 3단계까지는 임기응변이나 준비해 놓은 시나리오로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단계를 거듭할수록 거짓말의 구조는 복잡해진다. 기존에 자신이 했던 말들과 앞으로 해야 할 말들을 연결하는 구조를 촘촘하게 짜놓지 않으면 순식간에 그 거짓말은 정체를 드러내게 되어있다.


그래서 진짜 좋은(?) 거짓말은 거의 대부분의 사실에 아주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희석시켜 놓는 것이다. 그래야 거짓말의 농도가 낮아지고, 여차하면 사실을 몇 개 더 풀어놓음으로써 거짓은 희미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량의 사실에 다수의 거짓을 섞게 되면, 확연히 드러나는 거짓을 덮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에 빠지게 된다.

 



예전에 타고난 머리와 말재주가 좋은 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의 광고주이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친구 같은 관계로 잘 지내왔다. 나는 그의 비상한 머리와 다소 무모한 추진력에 항상 감탄했다. 누구를 만나든 다수의 사실과 약간의 허구를 교묘히 섞어 결국엔 설득해 내는 그의 능력에 나는 존경스럽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이 더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가 어느 술집을 방문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는 엄청나게 비싼 고급 술집에서 날이면 날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돈이 없다며 함께 가는 것을 거절하던 나에게 본인이 술값을 다 내겠다며 항상 나를 끌고 다녔다. 나는 그 술값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매번 다른 이유를 대며 둘러댔다. 미국으로 이민 간 이모에게서 받은 유산이랬다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가,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다고 하는 등 이유는 날마다 늘어났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린 그는 갈수록 돈이 부족했고, 행사를 할 때마다 엄청난 돈을 뒤로 빼돌려 술값으로 탕진을 했고, 그 덕에 나는 항상 부족한 예산으로 행사를 치러야만 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모른 채 할 수밖에 없는 '을'이었고, 부족한 예산 때문에 나의 협력사에게 또 빌다시피 부탁을 해서 겨우 겨우 행사를 마치곤 했다.


한때 내가 부러워하고, 때로는 존경하기까지 했던 그의 능력은 술과 여자를 만나면서 엉뚱한 능력으로 탈바꿈해 버린 것이다. 상대방을 잘 현혹시키던 화려한 말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누구라도 믿지 않을 법한 거짓말만 늘어놓는 모양새가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 거짓을 덮기 위해 수없이 많은 새로운 거짓말을 양산해 냈고, 급기야는 부모님까지 그 거짓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다른 클라이언트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통해 그의 소식을 간간히 전해 듣고 있다. 나와 관계가 끊이지고 얼마 후 횡령 문제로 결국 회사에서 잘리면서 고소고발을 당할 상황에 처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사람들에게 내가 그를 신고했을 거라며 근거 없는 소문을 여기저기 퍼트리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계속해서 잘 살렸다면 정말 훌륭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텐데, 술과 여자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마저 적으로 만드는 그의 말로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강제 퇴사 이후 회사를 차려 또 많은 일들을 하며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하니 그 악마의 재능이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반대로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일단 거짓말을 하는 순간 얼굴에 대부분 티가 나고 특히 즉흥적인 거짓말을 할 때는 귓볼까지 빨개지기 때문에 숨기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부득이하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지만 굳이 사실을 드러낼 필요 없을 때 해야 하는 거짓말, 일명 '하얀 거짓말'이나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도 한다.


나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아주 미리부터 준비를 한다. 최소 다음 단계의 거짓말까지 나름 준비가 되어야 마음을 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약 종목인 즉흥적인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미숙함도 거짓말을 자주 하다 보면 능숙해지는 순간이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능숙해질 생각은 없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 중에는 거짓말 말고도 많은 방법이 있다. 나만의 방식으로 거짓보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혹은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설득해 나가는 게 편하다. 앞으로도, 영원히 거짓말의 미숙아로 남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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