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매일 생각하고, 매일 걱정하고, 매일 꿈꾸는 것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조정래 작가의 신작 "황금종이"가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문을 했다. 2권이라는 비교적 짧은(?) 길이가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책을 내주시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이번 신작의 주제는 무려 '돈'이다. 이 세상에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돈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과 철학이 어떨지 너무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레 책장을 펼쳤다.
소설은 이태하라는 청렴한 변호사를 중심으로 각 의뢰인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개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을 띠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에는 돈에 관한 아주 내밀하고 디테일한 속성들이 잘 녹여져 있다. 어디 딴 세상의 돈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다. 글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마치 내 속마음이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었고, 나는 이렇지 않다며 애써 스스로를 위안할 때도 있었다.
극 중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바꾼다면 바로 내 동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내 자신의 이야기기 될 수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단 한순간도 돈과 연결되지 않는 일이 있을까? 단언컨대 99.9%의 모든 행위는 돈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하고, 옷이 필요하고, 먹을 것이 필요하다. 돈이 필요하지 않은 일을 찾아내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단 한건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여겨지는 법이다. 다른 모든 것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특히 돈에 관해서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정답인 것이다.
이 책은 과연 '돈은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만족스러운 것인가', '도대체 얼마의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답을 내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직접 답을 정의하지는 않았으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그 정답을 알게 된다. 아니 이미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우리는 모두 그 답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돈은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기도 하고, 번듯한 사업가를 노숙자로 만들기도 하며, 우애 있는 형제들을 철천지 원수로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본문 속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거기에 '돈'을 추가해야 한다"라고 했다. '돈'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돈'은 모든 사람들의 최종 목표가 아닌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순수해야만 하는 '정치'와 '종교' 조차도 돈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지 이미 오래이다. 그런 의미에선 세상을 지배하는 '정치'와 '종교'가 '돈'과 같은 선상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와 '종교'를 지배하는 '돈'이야말로 절대적 우위의 가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유산 문제, 건물주와 임차인간의 임대료 문제, 연인 간의 재력 차이로 인한 갈등,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해 버린 기업가들의 죽음, 재벌과 하청 간의 갑질 문제 등 대부분의 소재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너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속살을 드러내는 전개 방식으로 읽는 즐거움을 준다. 각각의 챕터마다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에 대입하면서 나는 어떠했는지, 내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비교하면서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졌다.
이틀 만에 다 읽혀진 책의 마지막 장에 <끝> 아니라 <3권에 계속>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길 간절히 기도했으나 아쉽게도 책은 2권으로 끝이 나버렸다. 돈에 관한 소재는 무궁무진했을 텐데 2권으로 끝을 내야만 했는지 작가님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직은 정정한(?) 80세 밖에 안되셨으니 조만간 후속작을 내주시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