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장님의뻘소리
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어느새 20명까지 눈 깜짝할 새 커져버렸다. 정확히는 3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의 성장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애초 시작을 함께 한 창업 동지들과는 딱 10명까지만 키워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이미 2년이 채 안된 시점에 무너져 버렸고, 사람을 뽑아도 뽑아도 늘 일손이 부족한 그런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다른 회사들의 기준으로 보면 현재 인원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어도, 우리는 사람을 혹사하면서까지 일을 하지는 말자고 처음부터 다짐했기에 어느 정도 오버 워킹이 예상되면 미리미리 사람을 뽑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20명이 되었을 뿐.
70년대 유명한 표어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표어처럼 우리도 덮어놓고 뽑다 보니 거지꼴을 못 면할까 싶어 전전긍긍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이 정도 인원 유지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일감이 유지된다는 것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언제인가부터 취업 준비생들의 목표를 물어보면 늘 대기업, 공무원 이 두 가지로 압축이 된다. 대기업을 간 친구들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게 되고, 그저 그런 중소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은 모임에서도 상대적으로 위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과연 좋은 곳인가? 라는 질문에 수많은 관점의 의견이 있을 테지만 온전히 본인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절대 아니올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단 한 번도 대기업 혹은 대기업의 계열사를 꿈꿔본 적이 없었고, 중소기업의 직원으로서 수없이 많이 상대해본 대기업 직원들의 모습은 그다지 부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역시나 어떤 회사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케바케이긴 하지만 대체적인 모습이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물론 본인이 대기업을 실제로 다녀본 적은 없기에 그들의 이야기와 곁에서 지켜본 정도의 간접적 경험을 토대로 판단한 것이어서 신뢰도는 매우 떨어지는 부분이나 앞으로 대기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있다면 조금은 참고가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1.
본인이 대기업에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부분이 바로 엄격한 조직생활이다. 또 막상 시켜만 주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굳이 사서 해 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하다. 조직이라는 것은 어느 회사에서나 존재하지만 대기업이라는 곳의 특성상 더 엄격히 위계와 질서가 잡혀 있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에 대한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필수 불가결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전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끝이 보이지 않는 층층시하의 보고 체계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개인적으로 숨이 턱 막힐 뿐. 실상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주로 경험한 회사들의 경우에는 대다수 비슷한 형태였고, 당사자들의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계 회사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한국의 대기업과는 조금 다른 경우가 많다. 담당자(PM)-과장-차장-본부장-임원-대표로 이어지는 한국 기업의 경우와는 달리 담당자(PM)가 직접 담당 임원에게 브리핑을 하고 의사결정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하게 되는 장점이 있지만 담당자 스스로가 막중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 부담감이 있다. 어느 쪽이 좋은지는 양쪽 다 경험해 보기 전엔 알 수가 없겠지만.
이러한 대기업들의 특수한 조직문화로 인해 하급직원 일수록 조간 미팅 및 브리핑을 위해 출근 시간이 당겨지기도 한다. 요즘에는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반적인 이야기였고, 아직도 일부 대기업에서는 조간 보고를 위한 조기 출근 문화가 남아있는 곳도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2.
대기업의 조직원으로 생활하다 보면 자신의 업무 외에는 잘 경험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통상 각각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타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전체 업무를 조율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그러다 보니 한 개인이 프로세스의 전 과정을 해결하는 경험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직력이 뛰어난 축구팀에서 한 개인이 스트라이커에서부터 골키퍼까지 모든 포지션을 수행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큰 조직일수록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기본적인 덕목이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 여러 협력사 혹은 파트너들과 조율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한 개인이 모든 프로세스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도 각자의 고유 업무가 있기는 하나 통상 작은 조직들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전체 과정에 다른 파트에까지 영역을 넘나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이는 업무의 효율성 측면으로만 보면 다소 떨어질 수 있으나 전체적인 과정을 경험하며 조율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전체 조직 내에서 특정한 분야를 파트너들과 조율하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사람이 되느냐는 개인의 성향과 역량에 달렸다. 필자의 개인적인 성향만을 놓고 본다면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더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3.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자신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중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나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코스를 밟은 사람이 다수이다. 수많은 경쟁을 통해서 이 자리에까지 왔고 또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숙명을 가진 이들이다. 그렇기에 자신감이 에너지이고, 힘의 원천일 것이다. 자신감이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높은 신뢰감을 주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다만 그 자신감이 도를 지나쳐 폭주하게 되는 경우, 혹은 자신감의 경쟁에서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 잘못된 결과로 표출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좌절을 맛보든 간에 항상 그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건데, 특히나 경쟁이 심한 조직일수록 어떤 방향으로 던 삐뚤어 지기가 쉬운 법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단단한 것 같지만 언제나 쉽게 깨어지고 흔들리게 마련이다.
대기업의 타이틀을 떼고, 나 스스로의 힘(나力)만으로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 늘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그러한 능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을 때 안에서도 밖에서도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큰 조직 안에 있다 보면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보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도 하거니와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이미 멀리 와버린 경우도 있다.
4.
대기업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대기업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어불성설이다. 본인이 만나본 사람이 그 조직 전체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조직 내 모든 사람의 만족도를 객관화하여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 현실이기에, 대기업을 가고 싶은 청년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대기업을 가고 싶은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돈인지, 명예인지, 복지인지, 비전인지, 성장인지.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길 추천한다. 그저 경주마처럼 이유불문 오직 대기업만을 목표로 달려온다면, 그 목표가 사라지는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마치며.
중소기업에 14년간 근무하고, 4년째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중소기업의 장점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앞에 긴 썰을 풀었는지도..) 앞서 이야기한 대로 최초 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4년 만에 20명이 되었고, 연매출 기준 매년 2배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처음 본인과 사업을 함께 시작한 초창기 멤버들은 처음 2년 동안 그야말로 죽도록 고생을 했지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임원급(?) 대우를 받고 있다. 물론 연봉이나 각종 혜택이 대기업에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겠지만, 회사의 주요 멤버로서 자유로운 출퇴근과 주요 의사결정권, 법인차량 지원, 각종 인센티브 및 주주 배당금 등 전반적인 면에서 대기업 못지않은 만족도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 본인은 굳게 믿고 있다.)
본인이 경험했던 다른 중소기업을 비롯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만큼이나 경직된 의사 결정구조를 가진 회사도 많고, 열악한 처우에 비해 과도한 업무, 복지나 기타 혜택이 전무하거나 미래가 불투명한 회사도 많다. 모두가 대기업을 꿈꾸지만 이러한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사람이 훨씬 숫자가 많은 것도 현실인 것이다.
딱 한번 사는 인생이다. 누구나 선택을 하는 것은 필연적 현실이지만, 남들이 다 하는 것들을 따라가기보단 자신의 장점과 성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들을 놓고 한 번쯤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보길 바란다. 이 길이 정말 옳은 길인지. 이 길이 정말 최선인지. 결과는 아무도 미리 알 수는 없으나, 묻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대기업 #중소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