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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31. 2024

나는 전혀 부럽지가 않어

그러니 제발 나를 가만히 놔둬주었으면 좋겠어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니가 가진 게 많겠니? 내가 가진 게 많겠니?
난 잘 모르겠지만 한 번 우리가 이렇게 한번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보자고
너한테 십만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 나는 거야
누가 더 짜증 날까 널까? 날까? 몰라 나는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2022년 장기하가 발표한 <부럽지가 않아>는 그 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노래도 아닌 것이 랩도 아닌 것이 그냥 읊조리듯 하는 말인데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깊숙이 찔러오는 노래이다. 특히나 나에게 더 와닿는 이유는 이 노래의 철학이 나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각종 SNS로 인해 너도 나도 평균 올려치기의 삶을 살고 있다. 없어도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과시를 위한 플렉스를 하는 그런 시대이다. 전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비교가 되었지만 이제는 전국적 아니 글로벌하게 비교의 대상이 넓어졌다. 그러다 보니 SNS는 더 이상 즐거움의 도구가 아니라 욕망의 화신이 되어 우리 스스로의 삶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나의 주변에도 나보다 더 잘 살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과 동시에 명품, 스포츠카, 해외여행 등의 플렉스를 한다. 자기의 돈으로 자기가 그렇게 산다는 걸 누가 말릴 수 있으랴.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시피 나는 그런 소비를 선호하지 않는다. 한벌에 몇 십만원하는 반팔 티셔츠, 500만원을 훌쩍 넘는 패딩, 백만원이 기본이라는 바지와 신발 등을 왜 사는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사는 것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매번 나에게도 그런 소비를 강요하는 게 문제이다. 내가 몇 십만원하는 반팔티를 입으면 나도 명품이 되는 건가? 내 스스로가 명품이 아닌데 포장을 아무리 좋은 것으로 싼다 한들 내가 명품이 될 리가 만무하다. 더구나 5만원 미만의 아주 훌륭한 티셔츠도 널리고 널렸는데 이쁘지도 않은 명품 티셔츠를 굳이 사야 할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그들이 틀리고 내가 맞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살면 되는 문제인데 나까지 그렇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지가 항상 의문이다. 나도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에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플렉스를 하기도 한다. 각자 자기만의 중요도에 따라 소비 패턴이 다른 것뿐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나의 큰 변화는 전 직원들의 퇴사로 인해 반백수 상태가 된 것, 그리고 열심히 운동을 해서 7kg 이상의 감량을 한 것, 그리고 인생 첫 수입차(BMW 520i)를 산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고급 럭셔리 수입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BMW 520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반응해 준다. 하지만 다이어트나 강제 은퇴 상황에 대해서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거나 무반응일 경우가 많다. 


나의 (쓸모없는) 분석에 따르면 내가 산 BMW 520이 자신의 차보다 낮은 급의 수입차이기에 관심을 가져주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지만, 다이어트나 강제 은퇴 상황은 결국 자신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으로 보였다. 즉 자신이 이미 도달한 영역의 경우 충분히 축하하고 관심을 보여주지만, 자신이 도달하지 못할(한) 영역에 대해서는 부러움(질투)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지 않기에 굳이 직접적인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아,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내가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지인(동생, 친구 가릴 것 없이)을 만나면 입이 닳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들의 열정과 창의력, 그리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노력이 부럽고 대단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명품이나 수입차 같은 걸로 자신을 치장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크게 부럽거나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반응이 뜨뜻미지근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나의 다이어트에 그런 반응이었던 것처럼...ㅎㅎ)




요 근래 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회사를 3년 만에 큰 회사로 키우고, 4년 만에 사옥을 올리고, 5년째에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다가, 6년 차에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고, 7년 차만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모든 과정에 사람들의 먹잇감이 풍성하다.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의 의견은 매우 부정적이다. 내가 살아온 방식,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 회사를 운영하는 철학 등은 다 관심 없고 오로지 직원들이 전부 그만둔 것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다. 잘 될 때는 별 것도 아닌 게 잘 된다고 까고, 안 되니까 건방 떨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까는 걸 내가 무슨 수로 막겠는가. 아주 친한 지인들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처음엔 솔직히 짜증이 나기도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요즘엔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편이다.


나의 몰락(?)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됐다. 실제로 나는 몰락하지 않았고, 그들이 그것으로 자신들의 질투심과 열등감을 해소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물고 뜯고 씹고 맛보고 즐겨도 나는 하등 지장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삶에 단 '1'도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한 단계씩 클리어하고 있는 중이다. 약간의 시간적, 상황적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계획에 맞춰서 잘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들의 걱정(?)대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은 크게 문제없이 얇고 길게 욕심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살 계획이고 잘 순항 중이다.




부러움과 질투는 같은 현상에 전혀 다른 반응이다. 부러움은 동기부여가 되어 나를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에너지원이고, 질투는 내 삶의 에너지 일부를 쓸데없이 소모하여 나를 후퇴하게 만드는 에너지 파괴범이다. 다시 돌이켜보니 오늘 글의 제목은 조금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전혀 부럽지가 않어."가 아니라 "나는 질투가 나지 않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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