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Jun 05. 2024

코메디 같은 나의 <EXIT> 이야기

드라마틱한 EXIT를 바랬지만, 코메딕한 EXIT가 되었다

크던 작던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드라마틱한 엑시트를 꿈꾼다. 내가 세운 회사에서 평생 직원들 월급 주며 고통받고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기와 방법,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탈출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모두의 꿈인 엑싯은커녕 3년을 버티는 것도 힘든 게 사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창업 후 5년을 그야말로 '버티는' 회사는 26%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몇 년 전 통계이기에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 줄어들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은 버텨야 한다. 어떤 방법(불법이 아닌 한)을 쓰더라도 버텨내야 기회가 오는 것이다. 버티지 못한다면 원대한 목표와 비전, 가치, 철학 따위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만다. 물론 재활용도 불가하게 철저히 망가지게 된다. 그러니 '버틴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셈이다.




7년 반 전에 나는 친구의 투자 제안으로 얼떨결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직원들을 모으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과정 중에 친구의 투자 제안은 철회되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럼 그냥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아서 하지 뭐..' 최후의 보루로 남겨놔야 하는 돈을 가장 먼저 손을 대고 말았다. 


함께 창업을 시작해 준 2명의 동생들(6살, 12살 차이)에게는 내가 먼저 6년 잘해서 둘째에게 물려주고, 또 6년 잘 운영해서 막내에게 물려주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회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12년 후는커녕 12개월, 아니 12일 후의 일도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처음 1년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 감정으로 죽어야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를 고민했던 시기였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냥 -2억이 되었다. 아파트 담보로 받은 1억은 진즉에 날아갔고, 중진공으로부터 받은 1억 대출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1년이었다. 앞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만큼 1년에 2억씩 또 빚을 져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하루도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것도 웃긴 게 일은 끊임없이 있고 사람도 늘어가는데 돈은 마이너스였다. 내가 그래도 일반인 중에서는 계산 좀 친다는 축에 속하는 데도 돈을 못 버는데 관리할 재간이 없었다. 자신감은 떨어지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사람들 만나는 게 두렵고,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중진공에서, 은행에서 돈을 받으러 찾아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1년이 되던 그때쯤에 나는 후배 C를 만났다. C는 나와 전 직장에서 한 팀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중국 회사에 근무하던 C는 한국에 올 때마다 그냥 소주나 한잔 마시던 사이였다. 그런 C가 1주년 되던 즈음에 아주 작은 게임 프로젝트를 하나 의뢰했다. 당시 돈은 못 벌어도 엄청 바쁘던 시기였기에 직원들에게 또 이 프로젝트를 꺼낼 수가 없어 내가 직접 사원 1명을 데리고 처리했다. 며칠 밤을 새 가며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고 아주 좋은 결과로 끝이 났다. 매출은 3억, 그중 수익은 4천. 회사의 1개월 운영비를 벌었다.


그러다 우리가 원래 6개월을 준비하던 큰 프로젝트가 어느 날 갑자기 취소되었다. 회사의 빚은 1.5년 만에 -3억에 이르렀다. 정확히 반년에 1억씩, 빚은 성실하고 꼼꼼하게 늘어갔다. 정말 버티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접던지, 그냥 죽던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2주 뒤, C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에 했던 그 게임 프로젝트가 그 사이 엄청난 성장을 해서  이번엔 글로벌에서 게임 대회를 한다고 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프로젝트 취소 후 2주 만에 더 큰 행운이 오다니. 꿈만 같았다. 또 취소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차피 망가진 몸 한 번 불살라 보기로 했다. 


작년에 3억에 수익 4천만원이던 프로젝트는 글로벌로 진출하며 매출 45억에 수익 10억짜리 프로젝트로 퀀텀 점프했다. 매출 15배에 수익은 25배로 늘어났다. 대회는 7월에 끝이 났는데 이미 그 프로젝트 하나로 우리 회사 1년 운영비를 다 뽑고도 돈이 남았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하반기에는 모바일 게임이 출시하며 추가로 매출 10억 수익 2억을 안겨 주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데 딱 6개월이 걸렸다. 회사의 빚도 다 갚고, 고생한 직원들에게도 최고 대우의 인센티브와 복지로 보답했다. '아.. 이래서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니 무슨 깜빡이 하나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행운이 치고 들어온다고? 아예 빛이 한 줄기도 없는 암흑의 터널이었는데 눈 감았다 뜨니 하늘을 날고 있다고?


그다음 해에는 더 가관이었다. 그 게임은 탄력을 받아 글로벌 대회를 2번이나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한번, 미국에서 한번 치러진 대회를 마치고 나자 매출은 120억까지 올라갔고 회사의 수익은 밝힐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직원은 어느새 24명까지 늘었고 한 달에 약 1.3억 정도의 운영비가 필요했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그렇게 해를 마치며 직원들에게 또 한 번의 최고 인센티브를 지급했고, 회사는 늘어난 직원에게 좋은 업무 환경을 제공하고자 사옥을 매입했다. (내가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책의 제목이 그래서 '지옥에서 사옥까지'이다) 다음 해에도 대회는 계속될 것이고 이제 나는 안심을 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안심을 하는 순간 항상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020년을 맞이했다.


모두들 알다시피 2002는 한일 월드컵의 해, 2020은 코로나의 해였다. 게임대회는 다 취소되고,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다. 오프라인을 주무대로 삼는 이 업계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회사는 20명의 직원들을 이끌고 고군분투했으나 8월까지 매출 '0'인 상태로 유지되었다.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서 회사 운영비를 약 10억 정도 마련해 놓았었는데 그 돈이 거의 소진될 때쯤 게임사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코로나 시국에 게임대회를 준비했다. 관객은 없고 오직 선수들만 참여해서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방식으로 준비를 했고, 최소 예산으로 진행되긴 했으나 1년 운영비를 간신히 충당할 수 있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10억을 준비해 놓았던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돈이 모자라 중도에 포기했다면 또 한 번 큰 고비를 겪을 뻔했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2021년에 70억, 2022년에 130억을 기록하며 회사는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서며 다시금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 뒤엔 또 항상 위기가 오는 법을 알았기에 그때부터 넥스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내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늙어갈 수는 없었기에 기회가 있을 때 조금은 힘이 남아있을 때 직원들에게 적당한 보상을 주며 독립을 시키려고 준비했다. 


나는 나대로 어느 정도의 노후를 보장받고, 직원들은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나가면 내가 뒤에서 서포트하며 서로 윈윈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며 2023년을 맞이했다. 언제나 계획은 계획일 뿐 현실일 리가 없었다. 2023년 상반기를 통으로 날리면서 회사는 또다시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이했다. 기존 게임대회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구경만 해야 했고 다른 일거리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글로벌 최고의 게임인 롤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데 총괄 운영대행사 비딩에 들어가게 되었고 1등을 하며 결승전 운영 대행을 맡게 되었다. 최악의 위기에서 최고의 행운이 또 한 번 우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 롤드컵은 4-5년에 한 번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이니 만큼 연속성을 기대하긴 어려웠기에 나는 이 롤드컵을 준비하면서 2024년 직원들의 독립 플랜을 추진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2024년이 되기도 전인 2023년 말 롤드컵이 끝나고 회사 내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팀 간 갈등이 수면 아래에 잠자고 있다가 롤드컵을 통해서 수면 위로 올라오며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고, 결국 롤드컵이 끝난 후 한 개 팀이 단체로 퇴사를 통보해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불안의 정체가 결국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2팀 팀장과 긴 협상 끝에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하고 이별을 맞이했다. 남은 1팀의 팀장과는 2024년의 계획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쉽게 합의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이야 말로 독립을 할 절호의 시기라고 생각했고, 팀장은 시기상조이며 독립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평행선을 탔다. 


결국 나는 1팀장의 독립 프로젝트를 철회하고 다시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갑작스럽게 1팀장과 팀원들이 클라이언트 회사로 전격 스카웃이 되었다. 그 회사는 우리와 오랜 기간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게임 방송사이자 후배 C가 다니고 있는 회사였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내가 뿌린 씨앗이며 내 부덕의 소치인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나간 1팀원들을 웃으며 보내주고 나는 그렇게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옥을 통임대 혹은 매각하는 일이었다. 어렵사리 전체 층을 비우고 엔터사와 통임대 계약에 성공했다. 다음으로는 통장에 남아있는 달러를 환전해서 최대한 대출을 상환했다. 직원도 없고 프로젝트 선금 등으로 크게 나가야 할 돈이 필요 없으니 예전처럼 비상시를 대비해 돈을 묶어 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는 그동안 해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운동, 유튜브, 출판, 작곡(공부), 집안일 등등




나의 원대한 계획은 직원들을 하나씩 독립시키고 현업에서 은퇴를 한 뒤, 그들의 후견인이 되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과정은 내 계획과는 달랐으나 결론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그림처럼 되긴 했다. 하지만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일, 미래를 위해 떠난 것이니 서로 탓할 것도 없다. 


멋진 그림으로 아름다운 엑시트를 꿈꿨으나, 조금은 빛이 바랜 코미디 같은 엑시트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어떤 방식이 되었건 엑시트를 한 건 맞으니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 남들처럼 수십억 수백억의 꿈같은 엑시트는 아닐지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소박한 엑시트인 것은 맞다. 


2024년은 앞으로 남아 있는 삶 동안 무엇을 하면 삶의 의미를 채워갈지 고민하고 도전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사고 안 치고, 큰 욕심 없이 살면 될 정도는 마련해 놓았으니 아프지 말고 후회 없이 살다 갈 수 있도록 올 한 해 잘 설계해 보고 도전해 보고 깨지면서 많이 배워볼 작정이다. 아직 최소 30년은 남은 내 인생을 위해서 올 한 해가 아마도 가장 중요한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전혀 부럽지가 않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