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사업은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
15번째를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에 나는 독일의 한 식당에 있었다. 주요 장소에 대한 답사를 마치고 저녁에 가볍게 생맥주 한 잔과 독일식 족발인 슈바이학센을 먹으며 일행들과 결혼기념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기념일에 독일 답사 데리고 왔다고 형수님이 저 싫어하는 거 아니에요? ㅎㅎㅎ"
"싫어하긴. 작년 이맘때 정말 지옥 문턱에서 허덕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보다 더 큰 결혼기념일 선물은 없다고 염려 말고 다녀오라 했어. 니가 조금 가볍기만 했어도 업어주라고 했는데 ㅋㅋㅋ"
정확히 1년 전 나는 다른 회사로부터 대대행으로 일을 받아서 해야만 했지만, 자존심도 서러움도 느낄 새도 없이 생존을 목표로 오직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대행이라는 것은 우리의 이름을 알릴 수도,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 수도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연명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대대행도 아니고 우리 이름을 걸고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다. 돈을 떠나서 우리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직원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정말 축복스러운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자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몰했다. 이런저런 예산들을 따져봤을 때, 최소 10억원이라는 큰돈이 필요했다. 나는 후배에게 반드시 내가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놓은 상황이었지만 10억이라는 돈은 너무 높은 벽이었다.
회사의 통장에 남아있는 돈이라고는 지난달까지 행사하고 들어온 잔금 2억원이 전부였다. 일단 차근차근 해결해나가기 위해 주거래 은행을 찾아갔다. 예상은 했었지만 은행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이제 겨우 매출 20억도 못하는 회사에서 8억이라는 돈을 빌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더구나 중국 회사와의 거래였던 것도 크게 한몫을 했으리라..
여러 가지 방법을 찾던 중 내 아파트를 담보로 법인 대출이 약 2억까지 가능하다는 의견을 주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20평대 아파트를 매매해서 살다가 34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고, 그 아파트의 시세가 조금 올라준 덕에 겨우 2억이라도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6억이 모자랐다. 나는 일전에 거래를 했던 신용보증기금을 찾았다. 역시나 금융권의 벽은 항상 높고 냉정했다. 그래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은 조금 다를 줄 알았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런저런 상담 끝에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려 2억원의 마이너스 통장! 내 개인 마이너스가 2천만원인데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다. 일단 그거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안 쓰면 이자를 낼 일은 없으니까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이제 남은 돈은 4억. 여러 고민 끝에 결국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내 얘기를 묵묵히 들으셨고 영 반응이 없으셨다. 40년 넘게 일을 하고 은퇴를 하셨고 남은 거라곤 빚 없는 아파트한 채와 약간의 노후자금뿐이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아버지의 생각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고 나는 일단 다른 곳을 먼저 알아보겠다며 집을 나섰다.
이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4억이라는 돈을 구하는 것이 너무 막막했다. 지인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해봐야 상황이 다 거기서 거긴데 무슨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가슴이 답답하여 친한 형, 동생들을 만나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