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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an 31. 2021

오, 마이 어무이!

손세차를 하다 문득 떠오른 기억


3년간 장기렌탈로 타던 카니발을 떠나보내고, 새로 맞이한 쉐보레 트래버스가 어제 출고되어 수령을 했다. 새차를 출고받은 기쁨도 잠시. 바로 다음 날 내린 눈으로 하얗디 하얀 차가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어제 출고받은 차가 맞나 싶을 만큼. 평소라면 2주일에 한번 세차를 할까 말까 한데, 그래도 새 차의 기분을 좀 더 만끽하고 싶어 출고 이틀 만에 셀프 세차장으로 달려갔다.  


묵은 때가 아니기에 거품 목욕 없이 그냥 고압으로 쏘기만 했는데도 바로 더러움이 사라지는 바람에 세차는 단돈 2천원으로 금방 끝이 나버렸다. 지독한 한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 그런지 물기를 닦아내는 동안 손이 얼어 버릴 것 같아 몇 번이고 손을 비비며 한기를 쫓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약 30-31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즈음, 내 어머니는 아파트에서 세차 일을 시작했다. 지금도 그런 직업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아파트 월세차 하는 차량이 꽤나 있었다. 처음엔 남의 밑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후, 새로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의 세차권을 권리금을 주고 들어갔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고작 30대 후반쯤? 나하고는 불과 20살의 차이라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었다.


처음 그 아파트의 세차권을 인수한 그때가 지금하고 비슷한 1월 말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리 그전에 경력이 쌓였다고는 하나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더구나 한 겨울에 시작하는 것이 꽤나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전체 아파트 차량 중에 약 30~35대를 매일 아침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먼지만 털면 되었지만, 눈이 온 다음 날은 오늘의 내 차처럼 엄청나게 더러워져 물로 한 번씩 씻어내야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엄청나게 온 다음 날 새벽, 어머니가 나를 조용히 깨우셨다. 잠결에 뭐라 뭐라 하는 얘기를 들었으나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나는 옷을 주섬 주섬 입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새벽 첫 버스를 타고 어머니가 일하는 아파트에 도착하니, 차들의 상태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부지런히 경비실을 돌아다니며 물을 떠다 나르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고무장갑 하나 낀 채로 더러워진 차들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기 시작했다. 키가 155cm에 불과한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차를 새 차로 만들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물 떠다 주는 일 외에는 그냥 엄마의 작업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던 거지..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던 것 같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어머니 혼자서 가셨지만, 눈 오던 다음 날은 여지없이 나는 새벽에 어머니를 따라나서야 했다. 급한 대로 출근 시간이 이른 차량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나는 한두시간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학교를 가야 했다.


빨간 날과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 한 달 동안 매일 세차를 해준 대가로 받은 돈이 1대당 월 30,000원~35,000원 정도였다. 1991년 물가를 생각하면 꽤나 비싼 편이었나 생각이 든다. 한 달에 약 30~35대 정도를 관리하셨으니 월 100만원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였던 것 같다.


내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따라 세차하러 간 기억은 아마도 군대 가기 직전까지였으니 약 4~5년 정도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 뒤로도 한 5년 정도를 더 하다가 관리하는 차량도 줄어들고, 체력도 달리시고 해서 세차 일을 그만두고 식당일과 청소일을 하시다 올해 연말에 정년퇴직을 하실 예정이다. 현재는 무려 서울대학교 환경미화 정직원!


그 철부지 아들이 이제 회사 사옥을 올릴 만큼 사업도 자리를 잡아서, 좀 편히 쉬셔도 되는데 정년까지는 어떻게든 채우시겠다면서 고집을 피우고 계신다. 하긴 나와 20살 차이라 아직 65세시니 아직도 청춘이시긴 하지.. 시간이 참으로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차를 하는 날이면, 특히 내손으로 셀프 세차를 하는 날이면 더더욱 그때 그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가끔씩 어머니하고, 내 아내하고 셋이서 술 한잔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도대체 술자리에 끼지를 않는다) 어김없이 그 이야기가 꼭 나온다. 내 기억엔 그때 철이 없어 차 닦는 건 안 도와주고 물만 떠다 줬다고 죄송하다 하고, 어머니의 기억엔 고등학생이 학교 가기 전 새벽에 그 추운 데를 나와서 2시간이나 도와주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하신다. 그 당시 그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입이 마르도록 나를 칭찬했다는 후문과 함께..


우리 큰 아들이 올해 고등학생이 된다. 그때의 나와 같은 나이. 과연 엄마가 새벽에 일하러 간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저 싸가지 없는 자식이 과연 엄마를 따라나설 수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아침에 제발 일어나기라도 했으면 하는 씁쓸한 마음으로 되뇌어 본다. 라떼는 말이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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