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졌을 때 먹는 음식

음식은 정말 사람을 살린다.

by 돌터졌다



“하이고, 이쁘기도 하다.”


할머니는 닭이 금방 낳은 달걀을 얼른 주워 바지춤에 살살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나에게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받아 이빨로 톡톡 껍질을 깨고 쪽쪽 빨아먹었다. 들큰하고 진득한 것이 고소하게 잘도 넘어갔다.


장날에 우리는 정류장에 쪼그리고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그날 산 것들을 야금야금 먹기 일쑤였다.

오늘 산 씨암탉은 발목에 끈이 묶인 채 대가리를 까닥이며 지렁이 따위를 찾아 쪼아 먹고 있었다. 어포를 질겅이며 나와 나란히 앉아 닭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닭이 알을 낳자마자 나부터 먹였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곧바로 시냇가로 가 닭의 배를 갈랐다.

할머니 집은 앞마당은 농사를 지어도 될 만큼 넓었고 집 뒤로 바로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안방 미닫이 문을 열면 바로 개울이라 할머니가 생선 따위를 손질하는 모습을 누워서 볼 수 있었다.

아직 추운 이른 아침이면 빼꼼 문을 열고 시냇가에서 아침 찬거리를 손질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내다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푹 삶은 닭이 어느 정도 식어지면 할머니는 또 나를 불렀다. 솥단지 옆 부뚜막에 걸터앉아 수저를 들면 스르릉 하고 뚜껑이 열렸다.

한 솥 가득 쩍 벌어진 닭의 뱃속에 노랗고 동그란 알들이 포도마냥 뭉쳐있었다. 그것을 수저로 똑똑 떠먹으면


“하이고, 이쁘기도 하다. 내 강아지.”


할머니가 등짝을 톡톡 두드려 준다.


내가 세 돌이 넘자마자 재혼을 한 엄마는 곧이어 의붓남동생을 출산했다. 5살이 갓 넘은 나는 그날부터 엄마 품을 잃어버렸다. 엄마는 젖을 먹인다며 늘 남동생을 끼고 있었고 그 곁에 가까이 가면 엄마 힘들라, 저리 가거라 하며 새아버지가 타박을 해댔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 뒤엔 엄마는 남동생 뒤치다꺼리에 힘이 부친다면서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늘 말없이 구석에서 그림자처럼 책을 보던 나를 끼워주던 때는 식사시간뿐이었다.

내가 먹을 밥그릇과 수저를 상 위에 놓으면서 엄마는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으리라. 아무튼 그때는 남동생 키우느라 힘든 엄마가 시골 외할머니댁에 보낸 것은 왜 나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지 못해 떡진 머리를 잔뜩 수그리고 단출한 옷가방을 들고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할머니 댁에 가까이 갈수록 허기가 졌다. 생호박이라도 베어 물면 달디달 것만 같았다.

도착한 터미널 속 내가 내릴 배차 구역에 미리 와서 서 있는 할머니가 창문으로 보였다. 머리를 바짝 치켜들은 내 이마가 저절로 펴졌다.


“할머니. 나 배고픈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달려온 할머니를 보고 남동생이 엄마에게 하듯이 일부러 찡그려가며 우는 소리를 했다.


“잉. 그려그려. 할매가 닭 삶아놓고 왔어. 얼른 가서 먹자잉.”

“잉. 알았어. 인삼은 빼고 삶았지? 난 인삼 싫단 말여.”


삼시세끼 백숙만 먹는 아이마냥 짐짓 투정을 부려가며 거들먹거렸다. 몇 달 만에 본 할머니였지만 바로 아침에 헤어진 것마냥 당연한 듯이 우리는 서로 얼른 집에 가자 가자 떠들어댔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그렇게 나를 귀히 대접하는 밥상 앞에 앉았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흐벅진 닭다리살을 물어뜯어 삼키면 할머니가 얼른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었다.


“하이고. 이쁘기도 하다.”


할머니는 내가 꿀떡꿀떡 맛나게 먹기만 해도 이쁘다고 하고 더 먹으라고 했다. 어쩌다 먹는 양이 줄어들면 우리 강아지 뭘 멕일꼬 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셨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알뜰히 국물까지 홀홀 마시거라 응원을 하고 깔끔하게 먹어치우면 잘했다 잘했다 웃어주셨다.

그저 맛있게 잘 먹기만 해도 대견하게 날 바라보며 할머니 눈가엔 눈물이 질금질금 맺혔다.


"늙어서... 늙어서 그랴... 늙으면 눈물이 그냥 나오는겨."


할머니는 소맷부리를 아무렇게나 잡아당겨 눈가를 꾹꾹 눌러버리고는 끔뻑끔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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