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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Oct 16. 2020

홍어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12.

뭘 선택하든지 엄마의 결정을 따르는 편인 나는 성인이 되서도 기꺼이 노예를 자처했다. 물건 하나를 사도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골랐고 대학원을 갈지 말지도 엄마에게 물어봤고 직장도 엄마가 좋아하는 곳을 꾹 참고 다녔다. 언제나 엄마를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소문난 맛집 다니기가 취미였는데 특히 홍어를 좋아했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냉큼 집어 든 것도 사실은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이미 오래전에 스스로 결론내기를 나는 엄마에게 복속된 자식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따랐고 엄마의 음식취향까지 똑같이 닮아있었다. 홍어 요리를 좋아해서 전문식당을 들락거리던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반가웠다. 홍어로 소설이라니, 혹시 홍어 요리 이야기가 나오려나 기대했지만 예상은 틀렸다. 그럼에도 깔끔한 문체에 서정적인 묘사가 좋았다. 다 읽고 난 후엔 여운이 내 몸에 짙게 밴 듯했다.

조금씩 조심스럽게 먹어도 결국 입천장이 벗겨지는 삭힌 홍어처럼 이 소설 역시 혀끝에서 까끌거린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5. 홍어. 김주영. 2014.



정작 홍어는 보이지 않았다.



   깊은 산골 빈곤한 집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세영은 열네 살이었다. 6년 전 읍내 춘일옥 안주인과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타지로 도망친 아버지의 모습은 가물가물했다. 삯바느질로 살림을 꾸려가는 어머니는 엄격했으나 그것이 불안을 감추는 방법임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야반도주한 아버지의 행실로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자신과 아들의 행동거지를 극도로 감추려고 했다. 어린 세영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한결같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여자였다.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6년을 1년같이 버티는 여자였다. 그런 모자에게 삼례가 나타났고 거침없는 그녀는 결국 아버지를 불러들인다.



   나의 형벌은 합당한가.

소설은 첫 시작부터 몇 장에 걸쳐 눈을 이야기한다. 툇마루까지 쌓인 눈 때문에 문을 열지도 못할 지경이다.  세영 모친이 완벽한 감옥 안에 갇혀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게다가 이웃과 교류 없이 단절되어 밤낮으로 바느질에 매달리고 있다. 남편이 타지에서 낳은 혼외자를 기꺼이 정성으로 돌봐주며 끊임없이 남편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결혼의 대가로 주어진 이 형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남편이 돌아오는 날 기나긴 형벌이 끝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죄를 기꺼이 감당하고 있었다. 지조 있는 아내가 명예롭게 선택한 형벌이었다.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

사실 그녀의 죄가 맞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먼저 신뢰를 저버리고 도망친 남편을 기다리며 어린 아들과 고스란히 동네 망신을 감당해야 했을까. 삼례는 그런 세영 모친을 꿰뚫어 보고 있다. 자신을 매질하는 그녀의 손에서 솔직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삼례는 아무렇지 않게 세영 모친을 거스르지 않고도 견고한 감옥과 바깥세상을 마음껏 휘젓고 돌아다닌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지키려는 이 대단한 결의가 얼마나 허술하고 모순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가출하던 그 어느 날 밤 모습 그대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돌아온 남편 곁에 누워 알게 됐을까. 지난 6년간의 형벌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웃는 일 한번 없이 자신을 끝없이 몰아세웠던 너의 모습은 남편이 돌아온 지금 행복한가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편에게 자신은 유용한 부속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진작 알았어도 겉돌았던 세월만큼 남편도 자신처럼 죗값을 치르고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음을 아들 세영이마저 알 수 있었다.


밥상 위에 놓인 은수저를 손에 들며 아버지는 방 윗목에 꿇어앉아 있는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난데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세영이 사팔눈은 아직 고치지 못했군."
...... 그러나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오랫동안 망각의 맨 가장자리에 남겨두고 잊어왔던 내 치부를 아버지의 한마디가 일깨워준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한마디는 열네 살의 나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몽환의 날개를, 누룽지가 수탉의 날개를 요절내고 말았듯이 깡그리 물어 비틀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내 처소인 도장방으로 들어가 꼬부리고 누웠다.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볼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라졌을까. 

돌아온 남편에게 수줍게 절까지 올리던 그녀가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감쪽같이 사라졌다. 목숨같이 지키던 아들마저 두고.

부엌을 드나들며 조석으로 쳐다보던 말린 홍어가 걸려있던 곳에 씀바귀 묶음을 매달아 둔 채로 사라졌다.

고무신을 거꾸로 돌려 신고 삼례처럼 떠나갔다. 세영은 조급 함 없이 삼례의 행선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작가는 친절하게 소설 마지막 303페이지에 그녀의 심경을 흘려두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바로 이튿날, 어머니는 어째서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어머니의 가슴속에 육 년 동안이나 간직되었던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아침에 문을 열고 내다보았던 폭설로 말미암아 모두가 허상으로 침몰되어버린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버지의 환상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놀랍게도 그것은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일까.

 


들어온 듯 나가야 할 때.



   자기혐오는 결국 자기 우월감에서 나온다.  자신이 세운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스스로 혐오하여 그것이 우월해지는 에너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형제 중에 내가 가장 엄마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형제들이 철없는 행동으로 엄마 속을 종종 썩여도 나는 늘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투정이나 해대는 멍청한 형제들과 다른 내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점점 더 숨 막히게 나를 졸라 희생을 했지만 문은 열릴 듯 말 듯 했다. 툇마루에 가득 쌓인 눈 때문에 문을 열고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있을 수만도 없는 상황 속에 답답했다. 엄마에게 투정 부리고 의지하다가 훌쩍 떠나버린 형제들은 나름의 삶을 닦아나갔다. 시행착오 속에 단단해져 가며 야무지게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형제들을 엄마는 점점 조심스럽게 대했다. 형제들과 엄마의 간격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서로가 편안하게 오고 갔다.

반면 20대 많은 시간을 엄마에게 바친 나는 목이 말랐다. 엄마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언제고 노래를 부르는 인형이 되어 다른 것들은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버튼이 눌리면 기쁘게 노래를 불렀다.


   20대 중반 직장과 관련해서 한 달 정도 집을 떠나게 되었다. 엄마를 보지 못한 기간 동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허전하면서도 후련한 심정과 묘한 평화가 좋았다. 낯선 곳에서 불안했던 나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직장 구내식당에서 점심 한 끼 만을 먹으며 퇴근 후엔 책을 보다 잠들기가 꼭 한 달째였다. 그 기간 동안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한 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엄마를 생각했지만 전화를 먼저 걸지 않았던 것은 집 떠난 형제들에 대한 엄마의 정성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조석으로 형제들의 끼니를 챙기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었다. 이제 내가 엄마의 전화를 받겠구나. 그럼 의젓하게 일도 잘하고 잘 지낸다고 해야지 미리 말을 준비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한 달이 지나 이대로 집으로 가지 말까 숙소 침대에 누워 혼자 울던 나는 살이 8kg이 빠져 있었다.

 

   한 달의 연수 뒤 집으로 돌아와 독립을 준비했다.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연애도 시작했다. 주말마다 엄마와 맛집에 가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공손하게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다. 한 번에 깔끔하게 해내지는 못했다. 엄마를 거절할 때는 천하의 불효자가 된 듯했고 번복하고 싶어 입을 우물거렸다.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린 것 같아 내내 속이 쓰렸다. 거기까지였다. 내 손에 쥔 10개 중에 3개는 드리고 남은 7개는 온전히 내 것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엄마는 즐겨 듣던 노래를 자주 듣지 못해 서운한 정도였고 항상 대기하던 나는 노래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우리 둘 사이의 노래는 이미 유행이 지나버렸고 각자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내는 기회가 될 것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홍어가 제목이라서 선택한 책. 끝까지 다 읽고 엄마에게 홍어 먹으러 가자고 할까 망설였다. 여전히 심리적인 선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까딱 한 발만 그 선 안으로 들여놓으면 엄마만 바라보는 나약한 나는 또다시 스스로 쇠사슬을 발목에 묶으려고 할지 모른다. 내가 가장 잘 살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며 이것을 엄마도 결국은 지지해주실 거라고 믿어보자. 지금은 떠나 있는 것이 맞다. 삼례와 세영 모친이 그랬던 것처럼 고무신을 돌려 신고 허연 눈밭을  뽀드득뽀드득 밟아나가는 것이 맞다.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읽어도 좋지만 누구나 하나씩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다시 한번 풀어헤쳐보는 도구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내 속의 무겁고 답답한 그것을 내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내 절망과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버텨내며 6년이란 세월을 보낸 뒤 나의 형벌은 끝날 것인가.

 

훌륭히 잘 이겨내겠다는 다짐 전에 이 형벌이 나에게 온당한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나의 오만과 혐오로 스스로 선택한 감옥이라면 그만 벗어나라고 작게 속삭여줄 테다. 




살다가 문득, 어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어쩌지 싶을때.  ★★★★

도저히 해답이 안나오는 문제 속에 빠져 있을때. ★★★

참으면 다 잘 될거야 라는 정신승리가 필요할때.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1~2편 글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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