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새벽은 유난히 더 춥다. 도시처럼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없어서 고개만 들어도 여기저기 능선이 보이고 너른 밭이 보인다. 바람은 자신을 막아서는 것이 없는 들판을 어린애 연 날리듯 정신없이 내달린다.
겨울은 밤보다 새벽이 더욱 춥다. 밤이 손발과 뺨을 차갑게 어루만진다면 새벽은 입고 있는 옷 속으로 안개처럼 스며들어 뼈마디가 으슬으슬하다. 그런 새벽이면 뜨끈한 아랫목 두텁게 깔린 목화솜 이불자락에 포옥 몸을 숨겨야 한다. 널찍한 이부자리에 벌써 할머니는 나가고 없다. 먼지 한 톨 없이 정갈한 방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며 일어날지 말지 고민하던 7살 아이는 문득 수상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쿵! 쿵! 쿵!
마당에서 나는 소리다. 애벌레마냥 이불을 동여매고 기어서 창호지 바른 가벼운 방문을 슬쩍 밀어 본다. 대번에 한기가 얼굴에 스친다. 내다본 마당엔 할머니가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
그간 할머니 집에 많이 다녀갔지만 도끼는 처음 봤다. 산신령과 나무꾼 이야기에 나오는 도끼가 실제로 있었다. 손잡이가 반질반질 오래된 도끼를 손에 든 할머니가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 꽝꽝 언 동태를 올려놓고 내리치고 있었다.
쿵! 쿵! 쿵!
팔뚝보다 더 커다란 동태를 두어 마리 도끼로 찍어 끊은 뒤 커다란 바구니에 후드득 몰아 담았다. 털모자부터 장화까지 온몸을 꽁꽁 싸맨 할머니는 그 새벽에 어딜 가서 동태를 구해온 것일까. 저 도끼는 어디서 났을까.
문득 할머니가 나를 슥 쳐다본다.
"추운데 문 닫고 더 자거라. 안 적 아침 될라믄 멀었어."
잠은 이미 달아났다. 굵고 꽝꽝 언 동태를 자르기엔 도끼만 한 것이 없었고 따끈한 아랫목을 박차고 나오기에 역시 도끼만 한 것이 없었다.
"할머니. 도끼는 우리 껀가?"
"그럼 우리 꺼지. 우리 껀께 내가 쓰지. 왜?"
"나는 도끼 처음 보는데. 이렇게 생겼네. 와. 엄청 무겁다."
"만지면 안 돼. 떨어뜨리면 클나. 보기만 해. 보기만."
마당에서 덜덜 떠는 나를 부엌으로 부른 할머니는 아궁이 앞에 세워둔 도끼를 보기만 하라고 하셨다. 바구니에 담긴 동태 토막을 깨끗한 물에 휘리릭 씻어 스르릉 가마솥 뚜껑을 열었다. 이미 아궁이에 소복이 쌓인 나무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동태를 솥에 죄다 붓고 물을 부었다. 저장했던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생강 몇 토막과 다진 마늘 한 줌에 고춧가루 반 공기를 대충 뿌렸다. 아궁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벌겋게 얼굴을 달구었더니 더워서 땀이 슬슬 나고 있었다. 할머니는 버글버글 끓는 가마솥 동태탕의 간을 보고는 다 됐다. 하시곤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장날에 사 온 단단한 두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대충 자르고 또 털어 넣었다.
"방에 들어가. 할매 밥상 가지고 갈게."
부엌을 나가지 않고도 안방과 연결된 작은 문을 통해 방으로 쏙 들어갔다. 곧이어 할머니가 그 문을 통해 밥상을 들이셨다. 마주 앉은 나와 할머니는 양푼에 가득 담긴 뜨겁고 빨간 동태탕을 먹기 시작했다.
보드랍고 고소한 고니를 수저로 똑똑 떠먹었다. 할머니는 하얗고 쫄깃한 살을 발라 연신 내 밥그릇에 올려두었다. 알맞게 뭉그러진 무 조각은 부드럽게 넘어갔다.
"할머니. 언제 동태를 사 왔어?"
"새복에."
할머니. 새복이 아니고 새벽. 히히 웃으며 할머니를 놀리자 그려 새복에. 또박또박 다시 말한다.
"새벽에 추운데 담에는 가지 말어. 알았지?"
"창섭이네 동태는 새벽에 가야 해. 아침에만 가도 다 팔리고 없어. 이렇게 시커멓고 큰 놈이 맛있지."
동태탕에 코 박고 정신없이 먹는 나를 보며 할머니가 슬쩍 한마디 덧붙인다.
"나 혼자 있으면 그냥 짐치하고 먹지. 안 사러 간다."
"그럼 내가 와서 할머니가 힘든가?"
"니가 와야 나도 이 동태탕도 먹고 쇠고기도 먹고 하지 너 안 오면 할머니는 만날 짐치만 먹으라고?"
"그럼 내가 여기서 할머니랑 살까? 할머니 맨날 동태탕 먹고 쇠고기 먹으라고."
"그건 안되지. 핵교는 큰 디서 다녀야지. 여기는 핵교도 멀고 안 좋아. 우리 똑똑한 강아지 보란 듯이 배워야지. 그래서 난중에 할머니가 미국도 보내줄께."
"미국은 비싸. 할머니."
"비싸 봤자 지가 미국이지. 너 할머니 돈 많은 거 모르냐."
할머니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난 알지 못하지만 명절만 되면 외삼촌이며 이모가 선물을 잔뜩 사들고 오던 것이 생각났다. 불편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어김없이 '도장만 찍으시면 돼 엄마.' '어머니 도장만 찍으시면 아파트 사서 모실께 같이 가세요.'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는 수건 뒤집어쓰고 땅바닥에 엎어져 밭일을 하다가 놀러 온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상 자랑을 했다.
"저 산도 할매꺼고 여 옆구리 돌아 밭도 할매꺼다. 저기 신작로 위쪽에 밭이랑 땅도 다 할매 꺼여. 영득이 할배 인삼밭도 다 할매꺼여. 소작 부친겨. 난중에 너 다 줄께. 다 니 해라."
"할머니. 그럼 외삼촌 말대로 팔아서 아파트로 가요. 아파트 살면 내가 거기서 학교 다니면 되지."
갑자기 할머니가 멈춰 서더니 등에 업힌 나를 추켜올렸다.
"내가 여기 있어야지. 그래야 새복에 동태 사다가 동태탕도 끓여먹고 쇠고기도 실컷 먹지. 아파트서 도끼질을 할 수나 있가디."
흔들거리는 할머니 등에서 어느새 살포시 잠이 든 나는 할머니의 다음 말은 미처 듣지 못했다. 아니면 못 들은 척했거나.
"자식새끼 괄시하는 것들이 에미는 중할까. 써글 것들. 십원 한 장 주나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