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떠나 주겠어? 기왕이면 빈손으로 떠나줘.
집에서 사용하던 상다리가 부러졌다. 뭐 대단한 진수성찬을 차려 먹은 건 아니었다. 소파와 의자 두고 바닥에 앉아 일하기를 좋아하는 습관 탓에 나무로 된 상 하나를 요긴하게 자주 사용했었는데 다리가 망가진 것이다.
버려야 하나?
망설인다. 미니멀카페에 가입했을 때 내 닉네임은 "청춘도 버렸는데 널 못 버려?"였다.
그렇다. 나는 청춘도 버렸다. (자랑은 아니다. 훗. 개 슬퍼.)그런데 상다리가 부러진 나무상 하나를 가지고 몇날며칠을 고민했다.
버려? 고쳐 써?
반들반들 내 손에 익은 상의 감촉이 좋아서 버리면 생각날 것 같았다.
이 상을 처음 사 왔을 때가 생각났고 이것이 없으면 번듯한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해야 했다.(좋은 건가?)
이상하게 다리를 접어 앉아야만 되는 것도 아닌데 바닥과 가까울수록 편안함을 느끼는 건지 선뜻 버리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 재활용 버리는 곳에 상을 가져다 두고 메모지 하나를 붙였다.
"월요일에 스티커 부착 예정"
폐기물 스티커를 동사무소에 가서 사 와야 하는데 마침 휴일이었다. 얄팍한 상 하나가 집에 있다고 해서 크게 집이 좁게 느껴지는 건 아닌데 버려 말어를 계속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버릴 걸 잘 버려야 인생이 좋아지는 거지.
2024. 새해 나의 화두는 버리기니까.
과거도 버리고 서운했던 감정도 버리고 지질한 마음도 버리고.
그 첫 번째 대상이 이 상이었는데 망설이는 내 마음을 독하게 다잡듯이 재활용수거장에 모질게 상을 내다 놓고 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독한 사람이다.
아까까지 내 손이 닿아 익숙했던 상이 덩그러니 어둠 속에 기울어져있을 것이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면 돌이 된 듯이 그 자리에서 고민할 것 같았다.
버려. 말어.
그게 토요일이었는데 월요일이 지나 오늘이 목요일이다. 수요일쯤 아파트 단지를 걸어 외출할 때 내가 버린 상이 보였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아직도 다시 가서 상을 주워오고 싶은 마음에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내 마음이 보인다. 추운 날 분리수거장 한쪽에 세워진 상이 측은했다.
상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없다. 나 혼자 쌓은 세월의 정 속에 저 상을 저렇게 벌거벗은 듯이 세워둔 것만 같았다. 단박에 동사무소로 달려가 스티커를 사 왔다.
-지름 60센티미터 나무 상. 무게 3킬로-라고 적고 2천 원짜리 스티커를 사서 붙여줬다.
이제 상은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울듯이 저 상이 나를 그리워하고 찾을 일은 없다. 나는 상 하나를 버리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사람이나 사물에 집착하고 쓸데없는 연민으로 끌어안아 서로를 괴롭게 했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담고 품고 삭힐 줄만 알았지 끝난 인연 흘려버릴 줄은 몰랐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고 그 상대의 것들은 얼마나 나를 치 떨려했을까.
나도 잘한 것이 없었다. 되돌아보면 모든 것은 나의 마음도 함께 버무려진 것들이 많았다.
오늘. 내 헛된 마음. 이천 원어치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