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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종이 한 장.

행복도 요구해야 옵니다.

by 돌터졌다

어려서부터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공책을 새로 사면 아무 데나 펼쳐 손으로 만져보고 볼에 대기도 한다.

새것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부드럽고 미백색으로 빛나는 종이의 질감을 만끽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가난은 어느 정도 상대적인 것이라 가난해서 비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형제들 중에는 내가 제일 빈곤하게 자랐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등학교 3년 내내 떠오르는 겨울 점퍼가 단 하나뿐이다. 그것도 좀 두툼한 가을 점퍼 수준의 옷이었다. 나는 그때 이미 "요구"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 기억에 바지 좀 사줘. 점퍼 좀 사줘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쩌다 새 공책이나 새 책을 갖게 되면 아무도 넘기지 않은 그 새것의 느낌이 굉장히 황홀했다. 그것이 휘발되기 전에 오로지 느끼고 싶었다. 어느 정도 집착을 했는지 고백하고 싶다.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께서 글씨를 매우 잘 쓰셨는데 궁서 흘림체로 아이들 상장에 반 번호와 이름을 직접 작성하신 것을 기름종이로 본떠 혼자 연습해서 노트에 옮겨 적을 정도였다.

미백색의 새 종이에 찌꺼기가 안 나오는 날렵한 볼펜으로 궁서 흘림체 글씨 쓰기는 나만의 쾌락이었다.

이제는 원하면 언제든지 새 종이를 살 수 있고 몇 천 원에 새하얀 A4용지가 수십 장이지만 아직도 첫사랑의 목덜미를 바라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설렌다.







새 종이 한 장을 사랑하여 그에 걸맞은 글씨체를 연습하였다. 천 원짜리 볼펜이라도 정갈하게 자세를 바로 하고 좋은 시와 훌륭한 명언을 적어두었다. 많은 것을 갖지 못한 나의 결핍이 종이 한 장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져 나로 하여 그 사랑에 걸맞은 품위와 태도를 갖추게 해 준 셈이다.

어제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신간 시리즈를 발견하여 모두 대출해 왔다. 아직 아무도 넘겨보지 못한 그 새 책들을 나는 또 얼마나 만지고 넘겨볼까. 내가 선택한 행복이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힘들고 불행했던 순간 나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닌 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한 관계들.

끌려가는 줄 알면서도 차마 거절하지 못한 불쾌한 호의들.

이마저도 없으면 어쩌나 싶어 선택한 불필요한 물건들.


모두 나는 없었다.


어쩌면 어떤 이는 한 두 줄 끄적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버릴 수 있는 새 종이 한 장을 나는 매우 사랑하였다. 나의 사랑이 글씨체를 불러오고 그것이 아름다운 기록을 남겼다.

내 손에 들린 지금의 불행 앞에 당당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이것들이 모두 내가 초대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 때문이다. 내가 없는, 무시해도 좋을 이유로 쉽게 선택한 종이 한 장의 불행이 이다지도 두껍고 견고한 책이 되어 나를 짓누르는 것인가 비로소 의심해 본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의 불행을 변명하려 페이지가 늘어나고 그에 걸맞은 신세한탄을 하면서 책이 되고 소설이 되어 불쾌하게 서사가 진행되어 갔다. 불행의 새 페이지는 넘기면 넘길수록 종이에 묻은 독으로 나를 중독시켜 버렸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고 종이를 넘기는 손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두꺼운 책을 멈추지 못하고 넘기고 있다. 입술로는 계속 '거기 아무도 없어요? 누가 내 손을 좀 잡아줘요.'라고 달싹거리고 있다. 요구할 줄 모르던 작은 소녀는 나이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요구하기보다 스스로 손을 멈추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불행의 페이지를 계속 넘기는 자신의 손을 스스로 멈추고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새 종이에 다시 아름다운 무언가를 써 내려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수백 장의 불행을 넘기는 것은 중독으로 삶이 망가질 테지만 새 종이 한 장에 새긴 행복은 스스로 고귀하게 살게 해 줄것이다.


나는 이제 어떤 책을 쓸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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