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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그런다.

시절인연이 뭔가 했습니다.

by 돌터졌다

살다 보면 깊은 인연을 피하게 되는 때가 있나 보다. 이미 맺어온 인연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서 이제는 정말 북어처럼 퍼석퍼석하게 살련다 결심을 해도 아주 간혹 속이야기를 터놓게 된다.

내가 좀 눈치가 둔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얼굴 화끈한 일이 오늘 또 있었다.

난 또 그런다.






찾아간 곳에서 환대를 받고 나도 정성껏 답례를 하고 돌아온 날부터 사실 마음이 무거웠다. 내 감정에 치우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는지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살짝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나는 핸드폰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다가 저녁 무렵에 한꺼번에 메시지를 확인하곤 하는데 주중에 보자는 내용이 와 있었다. 바로 답장을 하지 않아서 상대방이 혹시 실망했을까. 아니면 그저 내가 둔한 사람인 것을 알고 신경도 안 쓰고 있을까.

정성껏 알겠다는 답장을 쓰고 바로 날짜를 확인해 가며 금요일 직접 찾아갔다.

주중에 보자는 문자는 월화수목금이겠지, 토일은 주말 아닌가?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평일 내내 부재중이고 토요일에나 돌아온다고 한다. 헛걸음을 했지만 미리 오늘 온다고 꼭 집어 말하지 않은 건 나니까 생각하면서 돌아섰다.

금요일 찾아간다는 말을 하면 혹시나 부담이 될까 싶어 지나는 길에 들른 것처럼 잠깐 얼굴이나 보고 인사나 할 생각이었다. 주중에 보자 했지만 오래 대면은 부담스럽고 내 딴에 슬쩍 얼굴 한번 보고 때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 인연인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받은 문자엔 또 다음 주 중에 보자는 말이 들어있었다. 이번엔 오늘 바로 다녀왔다. 십여분 정도 간단한 인사를 하고 바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개운했다.

이제 끝난 인연이다. 사람의 인연은 동네의 우물가 같은 것이어서 물맛이 아무리 좋아도 멀리 다른 마을 우물을 이용하기는 어렵다. 그럭저럭 내 발밑 우물가를 찾게 된다. 오다가다 스칠 때 가서 마시면 반갑기야 하겠지.

아하. 알겠다.

내가 왜 바보같이,

주중에 만나자는 문자에 주중 언제요? 무슨 요일 무슨 시간이요?라고 물어보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나는 어렴풋하게 깊이 맺을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이고 불편했다는 사실을.

그냥 딱 한 두 번 이야기 나눌 만한 인연인데 지나치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만나자면 또 가야 하는 줄 알았다.


난 또 그런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 한마디에 메뉴 걱정을 혼자 하고 있었다.


방문한 나에게 오늘은 자신의 가게 안에서 모임이 있다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십여분 남짓 서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나중에 여기 당신 가게로 쇼핑하러 다시 오겠노라는 말을 하고 빠져나올 때 발바닥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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