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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봐?

알았으면 끄덕여줘.

by 돌터졌다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을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다는 것보다 좀 더 멋진 표현 같다. 19세의 나에겐 이것도 사치일 만큼 암울한 시기였다. IMF로 인해 선택의 폭은 매우 좁았다.

집을 떠나 혼자 대학생활을 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학비가 거의 들지 않아야 하고 반드시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다. 국립대학교의 경쟁률이 좀 올랐던 기억이 난다. 난 4년 내내 학비걱정 않고 기숙사에서 살 수 있는 대학교를 골라 단 한 장의 원서를 썼고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청바지 한 벌로 4년을 나더라도 @@대학교로 가자! 어쩌든 졸업 못했겠냐! 싶은 아쉬움이 짙다.

내 보호자는 나였으므로 사립대학교 등록금의 액수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제일 좋았던 것은 웅장한 도서관도 아니고 잘생긴 선배들도 아니었다. 밥이었다.

아침에 기숙사에서 늦잠을 자다가도 기숙사 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 눈을 번쩍 떴다. 남자 기숙사 학생들과 여자 기숙사 학생들이 은근히 시선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탐색하기도 했던 식당이었다.

물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밥이었다.

아. 오늘 치킨 나온다. 아싸.

침대에서 그대로 일어나 세수만 간신히 하고 질끈 머리를 묶고 운동복 차림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밥냄새에 눈이 번쩍 뜨여서 재빨리 반찬을 탐색하고 신중히 식판에 반찬 배치를 고려했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부지런했다. 그 이른 시간에 머리를 곱게 말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갖춰 입고 나왔다.

저런 아이들이 연애를 잘하겠지? 부럽다.

빈틈없이 담긴 식판을 휘어지게 들고 자리를 잡고 먹기 시작했는데 바로 앞에 같은 과 여자애가 앉았다.

이건 뭐 식판이 휑하다. 그 애는 몇 마디 이야길 하더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그 시간이 길다.


"뭘 봐?"


우연히 손등에 앉은 무당벌레를 손가락으로 툭 튕기듯 물어보는 "뭘 봐?"가 아니었다.

베란다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강아지에게 물어보는 "뭘 봐?"였다.


"아니, 어쩜 그렇게 이것저것 골고루 반찬을 잘 먹어? 맛있어? 진짜 잘 먹는다."


되돌아온 대답이었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무안해서가 아니라 그전에도 종종 듣던 종류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온 남편에게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고 웃으며 하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월급을 술집에 가서 절반도 넘게 탕진하고 돌아와 다음날 아침밥상에 뻔뻔하게 앉아 밥을 먹는 남편에게 하는 뉘앙스였다.


게다가 갑자기 그 애는 자기 젓가락으로 내 식판의 치킨 조각을 건드리려고 했다.


"나 이거 하나 먹을게?"


"아니! 안돼! 가져다 먹어."


4년 내내 나는 그 애랑 거의 말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그 애는 과제 때마다 같은 팀 하자고 연락해 왔지만 불쾌했다. 누구든지 나 밥 먹는 거 아니꼬워하는 사람하고는 상종하지 않는 게 그때 생겼다.

그것만큼 극명한 혐오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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