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20일 차, 오늘의 일기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네 집으로 피신을 갔다. 자고 올 요량으로 짐을 챙기고 약속 시간 전까지 사업계획서를 쓰는데,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나태함 탓일까, 아니면 코앞으로 다가온 교회 수련회 때문일까. 수련회가 3주도 채 남지 않았는데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더미다. 다들 본업이 있으니 봉사직인 교회 일엔 책임감이 덜할 수밖에 없다. 백수인 내가 총대를 메고 있지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업무 분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삐걱거리는 상황을 보며 깨닫는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에이스가 빠져도 네모나 세모 모양으로 굴러가긴 한다. 둥글게 굴러가지 않을 뿐, 어떻게든 굴러는 간다. 그 덜컹거림을 조율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그것이 청년부 회장이자 장차 한 기업의 대표가 될 내가 갖춰야 할 '머리의 역할'일 것이다.
일을 매듭짓고 나니 예상보다 출발이 늦어졌다. 퇴근길 도로 위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다. 40분 거리를 1시간 40분이나 걸려 엉금엉금 기어갔다. 저녁 7시, 배가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었지만 우리는 밥 대신 운동을 먼저 택했다. 원래는 아파트 헬스장에 들려서 운동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진 관계로 집에서 간단하게 홈트를 했다. 운동을 작심 6일 하고 4일이나 쉬어버린 내 양심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푸시업과 스쿼트를 묶어 10개씩 2세트, 20개씩 2세트. 오랜만의 노동에 근육이 힘을 못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창가에서 김치전과 알탕, 연어와 육회를 앞에 두고 회포를 풀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는 본격적인 수다를 떨었다. 나는 사업 준비와 연애,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내 현실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그런데 친구는 의외로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말했다. 자신은 변화를 원하지만, 막상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면서. 그 순간 우리의 MBTI가 스쳤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안정감을 누리는 ST인 친구와, 끊임없이 상상하고 변화를 꿈꾸는 NF인 나. 솔직히 친구의 그 '안정'이 아주 조금은 부러웠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 굳이 거친 가시밭길을 택했다. 이 선택을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은 평탄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삶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입만 산 놈이 되지 말아야지." 친구 앞에서 꿈을 떠벌리는 내 입이 방정맞게 느껴졌다. 조용히 성공해서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데, 말만 앞서는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났다.
밥값은 친구가 다 냈다. 내가 더치 페이 하자고 하니까 매일 이렇게 먹는 것도 아니고 복지포인트로 먹는 거라면서 돈을 내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 내 친구임에 감사하다.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코인 노래방에 갔다. 물론 여기는 내가 다 냈다. 반드시 성공해서 더 좋은 것으로 되갚아줄 테다. 코인 노래방이 끝나고 곧장 집에 갔다. 집에서는 티비를 보며 남은 사케와 컵라면을 먹었다. 여러모로 호강한다. 피곤했는지 12시가 되기 전에 잠자러 갔다. 출근은 나만 안 한다.
다음 날 아침, 친구는 출근을 위해 일어났지만 나는 이불 속에 남았다. "갈 때 꼭 깨워달라"던 호기는 어디 가고, 친구의 뒷모습에 "안녕"만 웅얼거렸다. 친구가 떠난 빈집에서 1시간 동안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정신 못 차리는 전형적인 백수의 아침이었다. 그때, 정신 차리라는 듯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기독교 매거진 아티클 에디터 서류 탈락. '아쉽게도 함께할 수 없습니다.' 10년 넘게 회사라는 울타리에 있었던 내가, 이제는 야생에 던져졌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31살 백수, 33살 결혼 목표. 인생은 내 계획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불확실성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사업계획서를 폈다. 어제의 반가움도, 아침의 나태함도, 탈락의 쓰라림도 모두 접어두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미래가 두려운 만큼 준비하면 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면 된다. 그래야 내가 반갑고 싶을 때 누군가를 웃으며 맞이할 수 있다. 지금의 고독과 배고픔은 훗날의 여유를 위한 담보라 생각하자. 오늘도 글을 건너뛸 뻔했지만, 기어이 노트북을 열어 일기를 쓴다. 하루 종일 남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만 할 뻔했던 나를 일으켜 세운다. 기쁨의 순간이든 고통의 순간이든 기록해야 한다. 나는 이제 소비자가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생산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