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6일 차, 오늘의 일기
오랜만에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방학 시즌에만 열리는 '한정판' 알바, 대학 기숙사 청소를 하러 가는 길이다. 청소 업체를 운영하시는 친구 아버지 덕분에 벌써 네 번째 합류다. 오늘의 파트는 세종대 기숙사 화장실. 내 임무는 배수구 뚜껑을 따고 그 안을 비워내는 일이다. 처음 이 일을 했을 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낯선 타인의 머리카락과 샴푸, 트리트먼트 찌꺼기가 엉겨 붙어 있는 적나라한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두세 번 반복하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뚜껑을 열고 능숙하게 이물질을 건져낸다. "못 한다"고 생각하면 진짜 못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하게 되는 것. 이것이 노동의 진리가 아닐까. 고단하긴 해도 금융 치료는 확실하다. 일당 16만 원. 백수에게 이 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이자 든든한 방패다. 잘 아껴 써야지, 다짐하며 기숙사를 나섰다.
알바가 끝나고 4개월 묵은 약속을 이행하러 갔다. 친한 동생에게 밥을 사기로 해놓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드디어 만나는 날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1시간 40분이면 족할 거리가 꽉 막힌 도로 탓에 2시간 반이나 걸렸다.
빠르게 씻고 재정비 후에 삼겹살집에서 마주 앉은 동생과 최신 근황을 나눴다. 동생이 연애를 시작했고 이제 2개월 정도 흘렀다며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연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녀의 남자친구에게서 5년 전,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열심히 사는 나'에게 취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야간대를 병행하고, 교회 임원에 찬양 인도까지 도맡았다. 친구도 놓치기 싫고 운동도 해야 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연애도 하려니 시간은 늘 부족했다. 나는 내 바쁨을 정당화했고, 여자친구가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원망했다. "나는 널 위해 시간을 쪼개서 만나는데, 왜 너는 몰라줘?"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했던 표현은 쌍방향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보고'였고, 나의 최선은 상대방을 외롭게 만드는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동생의 남자친구는 그때의 나와 판박이였다. 열심히 산다는 명분 아래 연인에게 소홀한 나르시시스트. 동생의 표정에서 과거 내 연인이 지었을 쓸쓸한 표정이 겹쳐 보였다. 나는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남자친구의 심리를 해석해 주었다. "아마 그 친구는 지금 본인의 성취감에 취해 있어서 네 외로움이 안 보일 거야." 내 말이 맞다며 속 시원해하는 동생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지난날 내가 주었던 상처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가슴을 쳤다.
서른한 살의 연애는 쉽지 않다. 준 상처만큼 받은 상처도 아물지 않아 겁부터 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부담을 느낄까 봐, 혹은 내가 또다시 상처받거나 상처 줄까 봐. 옛말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지만, 요즘 시대에 열 번 찍으면 그건 집념이 아니라 폭력이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도 수정되어야 한다. 용기는 난사하는 게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딱 한 번 크게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총알을 딱 한 발만 장전하고 있다. 마음에 둔 사람이 있지만, 섣불리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 고백 공격으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기보다, 천천히 스며들기 위해 거리를 조절 중이다. 물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알기에, 결국은 기도로 하나님께 맡겨드린다. 헛된 망상에 빠지지 않고, 나의 계획이 하나님의 때와 맞닿기를 기다리며.
오늘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대나무 숲 같은 하루였다. 배수구의 찌꺼기를 걷어내듯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털어내니 속이 시원하다. 이 짝사랑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뜨거운 여름이 올 즈음, 이 일기의 '시즌 2'가 해피엔딩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성장의 기록으로 남을지. 기대...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