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33일 차, 오늘의 일기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먼지 쌓인 계정에 들어가 보니 가장 최신 글이 무려 3년 전이다. 새 계정을 파서 각 잡고 시작할까 하다가, 귀찮게 일을 키우지 않기로 했다.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말하지 않던가. 습관을 만드는 첫 단추는 '시작의 허들'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라고. 사실 퇴사 전부터 '스레드'를 통해 짧게나마 글을 끄적여 온 덕분에 쓰기 자체를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해 가볍게라도 꾸준히 써왔던 그 작은 관성이, 퇴사 직후 브런치와 블로그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조만간 인스타그램도 다시 활성화할 계획이지만, 지금은 욕심부리지 않으려 한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려니 자꾸만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고개를 들었다. 그 부담감에 짓눌려 고작 이틀 만에 '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고, 그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고작 이 정도 압박에 흔들리다니. 내 멘탈이 이렇게 약해져 있었단 말인가. 충격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갔다. 러닝으로 복잡한 생각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돌아와서야,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타자를 칠 수 있었다.
글을 쓰다 보면 예전에 쓰다 만 에세이 원고들이 떠오른다. '이참에 다시 완성해 볼까?' 싶지만, 이 또한 지금은 독소 같은 욕심이다. 미련을 잠시 내려놓고, 브런치와 블로그라는 지금의 채널에 집중하며 글쓰기가 완전한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블로그에는 일상과 독서,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지난 2월 19일부터는 카페나 식당에 가면 내부 공간과 음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설프더라도 뭐라도 시각적인 소스가 있어야 사람들이 내 글에 머물러 줄 테니까. 글을 올릴 때면 늘 "아, 그 각도에서도 한 장 찍어둘걸" 하는 2%의 아쉬움이 남지만 괜찮다. 이것도 시작의 일부고, 시작했다면 이미 반은 해낸 것이니까.
https://blog.naver.com/inpersonal/224195564598
독서 카테고리에는 서평이나 독후감, 그 사이 어딘가쯤의 글을 남길 계획이다.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을 소개하고 내 사유를 덧붙이는 식이다. 인스타그램의 짧은 호흡에서 벗어나 블로그라는 넓은 도화지에 내 생각들을 길게 펼쳐보고 싶다. 나는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사람들과 해석을 나누는 게 참 좋다. 내 생각에 공감해 주는 것도 좋고, 나와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는 걸 볼 때면 뒤통수를 맞은 듯한 짜릿함마저 느낀다. 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순간. 이것만큼 콘텐츠를 풍성하게 즐기는 방법이 또 있을까. 보고, 읽고, 글로 써서 공유한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는다. 무플, 악플, 선플, 조회수, 공유수 등 그 모든 것이 피드백이다. 물론 달린 반응에 일일이 대댓글을 달고 소통하는 건 아직 너무 귀찮긴 하다. 이 게으름을 보면 난 아직 성공하려면 한참 멀었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100일만 지나면 지금의 이 자잘한 귀찮음과 고민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테니까. 지금의 습관만 잘 유지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
최근 송도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교보문고에 들렀다. 이제 약속 장소 근처에 서점이 있으면 들르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내게 서점은 수백 가지의 지식이 진열된 백화점이자 뷔페다. 사고 싶은 책은 넘쳐나지만 지갑 사정을 고려해 '밀리의 서재'에 있는 책인지 먼저 검색해 보는 치밀함도 잊지 않는다. 서가를 거닐다 창업을 앞둔 예비 대표의 시선으로 <일본 광고 카피 도감>이라는 책을 골라 들었다.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카피'의 힘이 궁금했다.
책장을 넘기며 공감 가는 카피도, 갸우뚱하게 되는 카피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황급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퇴사 후 이리저리 치이며 내 마음이 꽤나 닳고 약해져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하지만 이 뜬금없는 눈물 덕분에, 몇 년간 들락거리던 교보문고의 천장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천장에도 마치 책장에 책이 꽂혀 있는 듯한 재밌는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책들의 우주 한가운데 파묻혀 있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홀린 듯이 책을 구매하고는 아직 못 읽었다. 지금은 <사피엔스>를 읽는 중이다.
책의 나머지 페이지에 더 훌륭한 문장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서점 한복판에서 나를 울게 만든 그 문제의(?) 카피를 이곳에 고스란히 옮겨 적으며 일기를 마무리한다.
고백합니다.
과자를 반으로 나누면
항상 큰 조각을 나에게 주던 오빠.
실패한 첫 요리를,
맛있다며 남김없이 먹어준 할아버지.
공부를 잘 못하던
나의 특기를 찾아주신 선생님.
대학 합격을 부둥켜안고 기뻐해준 라이벌.
자기는 재수할 거면서.
나의 실수를 감싸주고,
고개를 숙여준 회사 선배.
사랑의 고민도, 일의 푸념도
늘 들어주는 여자 친구.
나를 전학시키고 싶지 않아
홀로 발령지에서의 생활을 선택한 아버지.
모처럼의 취업을 포기하고
나를 키워준 어머니,
이런 나를
받쳐주고, 혼내주고,
그리고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
이 중 단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이 마음, 말로 전하고 싶지만
역시 쑥스러워서
초콜릿에 담아 살짝 전할게요.
고마워요.
메이지 초콜릿 광고 카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