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다

퇴사 30일 차, 오늘의 일기

by 김시온

어느덧 퇴사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지난 30일, 나는 무엇을 하며 이 막대한 자유를 소진했나 뒤돌아봤다.

5가지로 추려볼 수 있는데 아래와 같다.


첫째, 세 곳의 알바에 지원해 한 곳에 합격했다. 커뮤니티 인터뷰어로서 커뮤니티 가입자들을 인터뷰하고 안내하는 일이다. 낯선 프로세스를 외우느라 초반엔 진땀을 뺐지만,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굴러간다.

둘째,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썼다. 매일은 못 썼어도 일주일에 2~3편씩은 꼭 올렸다. 지금은 일기 형태지만, 훗날 파티룸 사업을 위한 블로그 마케팅의 전초전이자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다.

셋째, 예비창업패키지 사업계획서 작성. 레드오션인 파티룸 시장에서 나만의 뾰족한 차별점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설령 패키지에 떨어지더라도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강행할 생각이다.

넷째, 벽돌책 격파. <이기적 유전자> 이후 두 번째로 도전한 <사피엔스>. 평소 읽던 에세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니어서 진도가 안 나가지만, 벌써 절반 이상을 넘겼다.

다섯째, 러닝의 재개. 5km, 10km를 다시 뛰며 예전의 체력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다시 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성취였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나름 촘촘하게 산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이 한 달을 통과하며 느낀 진리가 하나 있다.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열정이 없으면 그 시간은 죽은 시간이나 다름없다'는 것.

전전 직장을 다닐 때, 나는 콘텐츠 마케팅이 하고 싶어 출근 전과 퇴근 후에도 미친 듯이 살았다. '인스타그램 1일 1릴스 30일 챌린지'를 성공하고,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돈을 내가며 블로그 관리 대행을 배웠다. 그 열정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돌이켜봐도 새삼 대단하다. 그런데 막상 24시간이 온전히 내게 주어진 지금, 그때만큼의 불꽃이 튀지 않아 아쉬울 때가 있다. 강하게 말하면 느슨해진 '죽은 시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책하진 않는다. 과거의 그 지독했던 사람도 나이고, 지금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도 나다. 언제든 다시 불씨를 살려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앞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져야 한다. 스트레스는 더 이상 예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내고, 내 방식대로 소화해야 한다.


송도에서 3바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교회 누나가 내게 블로그 마케팅에 대해 물었다. 대행사 시절 바이럴 마케팅을 직접 집행한 적은 없고 얕게 공부만 했을 뿐이지만, "모른다"고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파티룸 창업을 위해 내가 부딪혀야 할 현실이기에, 기꺼이 알아보고 답을 찾아서 알려줬다. 알려주면서 공부가 되니 최대한 프로처럼 알려주기 위해 잘 알아봤다. 교회 청년부 회장으로서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임원들 간의 불화를 중재하고, 적절히 업무를 분배하며, 먼저 헌신하는 솔선수범까지. 귀찮아도 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으니 폰케이스 뒷면에 적힌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를 상기하며 기꺼이 해낸다.

나이가 든다는 건 결국 책임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임'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직급에 맞는 업무를 해내듯, 밖에서도 모임의 리더가 되었으면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경험과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경험을 해보면 좋다. 이 모든 책임의 무게가 곧 나의 '역량'이 될 것임을 안다. ENFP 특유의 열정과 도전 정신이 여기까지 나를 끌고 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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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남들과 다른 길을 가냐고. 성격 참 특이하다고. 예전에는 그들이 우물 안 개구리라서 나를 이해 못 한다고 치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의 내가 틀렸고, 그들이 맞았다. 나는 특이한 사람이 맞다. 남들이라면 진작 부러졌을 상황에서도, 나는 완전히 꺾여 나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다시 풀칠을 하고, 생명력을 끌어올려 기어코 다시 일어선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고도화된 시대라지만, 역설적으로 나 같은 특이한 사람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엔 더없이 좋은 세상이 되었다. 에너지를 조금 덜 들이고도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기꺼이 '특이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 같은 별종도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세상 어딘가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또 다른 '특이한 누군가'도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그 희망 하나로, 나의 서른한 살 백수 생활은 내일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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