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어린 동생이 내게 '어른'이 무엇이냐 물었다

퇴사 46일 차, 오늘의 일기

by 김시온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그동안은 사업계획서를 쓴답시고, 교회 수련회를 다녀왔답시고, 약속이 겹쳤답시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기록을 미뤄왔다. 운동도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까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개학을 앞두고 밀린 방학 숙제 일기를 한 번에 몰아 쓰기 위해 비장하게 마음을 다잡던 그때처럼 노트북 앞에 앉았다.


"백수는 도대체 매일매일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직장인 시절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바쁜 게 백수"라는 누군가의 말에 이제는 격하게 공감한다. 물론 '동행' 앱에서 인터뷰어로 활동하고 있고 사업계획서도 치열하게 준비 중이라 완벽한 백수라 부르긴 뭣하지만, 어쨌든 쉼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 '나'라는 사람의 초점이 흐려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잊고 있던 내 안의 초점을 다시 선명하게 맞추는 일이 있었다.


교회 동생이 아파서 입원을 했고, 청년부 사람들과 다 같이 병문안을 갔다. 나는 병문안 이후 일정이 있어 곧바로 집으로 가야 했기에 내 차를 끌고 왔는데, 찬양팀 베이스 연주자 동생이 교회 차에 타지 않고 굳이 내 차 조수석에 타게 됐다. 나와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스쳐 가는 동안, 동생은 조심스레 묵직한 질문 두 가지를 던졌다.


"형,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대체 뭘까요?"


오랜만에 훅 들어온 철학적인 질문에 속으로 살짝 설레면서도, 4살 어린 동생에게 행여나 '꼰대' 같은 훈계로 들릴까 봐 조심스러웠다. 잠시 핸들을 고쳐 잡으며 고민하다, 내가 내린 첫 번째 답은 이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것."


나를 잘 안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무기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명확히 알면 어떤 상황, 어떤 질문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모르는 분야의 질문이 들어와도 애써 아는 척 꾸며내지 않고 "그건 잘 몰라"라고 담백하게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반대로 내가 아는 분야라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뒤로, 나는 누군가의 질문 앞에서 어버버거리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에선 침묵으로 방어선을 치거나 유연하게 회피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친절하게 답했다. 설령 그것이 상대방이 원하던 '정답'이 아닐지라도, '나의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어른이 된다는 것. 나는 이렇게 답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듣고, 그에 맞는 다정한 답변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마침 그 동생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기도 했다. 사실 그 동생의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한때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상대방이 한창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머릿속으론 '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받아쳐야 재밌을까?'만 궁리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상대가 뒷부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까맣게 놓쳐버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조언은 과거의 나를 향한 반성문이기도 했다.

경청은 '나를 잘 아는 것'과도 묘하게 연결된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끝까지 귀 기울이면 대화의 꼬리를 물 수 있다. "그 부분은 제가 잘 모르는데,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라고 묻거나, 애매하게 아는 부분은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라고 되묻는 것. 그 작은 질문들이 상대방에게는 '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가 된다. 그렇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관계는 풍성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의 세상'에서 '우리만의 세상'으로 영토를 넓혀간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그 확장의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감'을 느낀다. 세상이 넓어질수록 감당해야 할 책임과 부담도 커지겠지만, 동시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내면의 근육도 함께 단단해진다. 그러니 우리는 대화해야 한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내 경험의 일부로 흡수하며, 어떤 파도 앞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잘 듣는 것'이다. 판단하기 전에 끝까지 경청하고, 상대를 향해 온전히 마음을 여는 것. 그렇게 우리의 세계를 확장해,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남들보다 훨씬 높은 해상도로 삶을 음미할 줄 아는 시야를 갖는 것. 4살 어린 동생의 질문 앞에서 내가 다짐한 '보다 나은 어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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