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에서 탈출하는 법
얼마 전 퇴근 후 친한 동생이 내게 꼭 보라며 하나의 유튜브 영상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유명한 개그우먼의 갓생 살기를 묘사한 영상이 있었다. 묘사라기보다는 조롱이었을 것이다.
22년 가을에 시작하여 23년 봄에 끝을 낸 나의 새벽 독서모임의 엔딩 이유를 듣고 아마도 후배가 웃으라고 보내준 것일 테다. 애초에 독서모임을 시작한 이유는 이 소제목과 똑같이 '무력감에서 탈출하기'위해서였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던 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레고 블록처럼 쌓아서 정말 잘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열의를 가진 스타일이라던지 (과욕하는 스타일인 것 같기는 하다) 진심으로 매우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아님에도 그 당시 프리랜서라는 자유직업이 가진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아마도 나를 몰아붙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결국 하루 3.5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을 7개월간 유지하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걸려보는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얻고 내가 이끌던 독서모임은 끝나버렸다.
이후 수면의 중요성을 깨달은 나는 아침에 무리해서 일어나거나 시간을 쪼개 쓰느라 고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온 또 다른 결과가 있었으니 바로 조금씩 조금씩 티가 나지 않게 젖어들어버린 게으름의 관성이었다. 앉아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른함을 불러일으키기 좋았고, 인터넷 속에서 만나는 거대한 세상은 단 몇 번의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도 방구석 의자에 앉아서 세상사 돌아가는 각종 뉴스(물론 입맛에 맞는 편협한 기사들만 눌러보게 된다), 연예인 가십거리들, 지겨워진다 싶으면 각종 짤로 유명한 숏폼들(물론 여기에도 숨찬 속도와 길이의 자기계발 영상이 들어가 있다), 힐링이 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동물 영상들, 그것마저 지겨워지면 웹툰의 세상으로 끊임없이 나를 데리고 다녔다.
거의 최소한의 노력으로 얻는 수많은 시청각을 자극하는 자극들은 쉽게 질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게 큰 기쁨을 준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냥 정확하게는 보고 있는 동안 내가 무얼 하는 건지 내가 알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얼 하는 건지 내가 알 수 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이 어쩌면 무의식 중에 내가 필요로 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긴밀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역시 뭔지 모를 그 감정들과 쾌락들도 역시 모호한 상태로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내가 내 감정을 모르는 상태, 내가 나의 시간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상태, 이 자극들이 자극인지 모르는 상태로 그저 노출되어 있는 상태, 그것에 대해 깊게 알고 싶어지지도 않는 상태.
사실 이런 건 크게 상관없다. 본인의 삶과 시간을 어디에 쓸지는 철저한 본인의 영역이다.
건강체질인 내가 면역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흔히 하는 "천천히 가도 괜찮아"는 꽤 큰 위로가 될 수 도 있었다. 시간을 좀 흘려쓰면 어때, 죽을 때까지 알 필요 없을 정보들에 좀 노출되면 어때. 생산성이 없는 이야기들을 보며 웃으면 좀 어때. 웃다가 어느 순간 딱히 웃기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상태로 좀 오래 앉아있으면 어때, 삶이 꼭 목적성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며칠이 걸린 것인지 몇 달이 걸린 것인지 혹은 독서모임을 끝낸 이후로 삶의 여유(나중에는 낭비로 이어진)라는 시간을 택하기로 했을 때 이후 지금까지 누적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출근이라는 일이 정말 심각하게 끔찍할 정도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출근길이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이건 싫은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로 문자 그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그 끔찍한 무기력함은 생 전체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삶이 너무 무력하고 지루했다. 그 무력함은 일상 속에서도 자잘하게 성인로써해야 할 일들에 대한 책임감을 급속도로 줄어들게 하기 시작했다. 사적인 약속을 어기는 것은 사소한 일이 돼버리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일을 그때그때 밀리지 않고 처리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틀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에 대해 또는 그 부당성에 대해 혼자 곱씹어보고는 했다. 경제적 자유가 없어서 나는 이런 틀 속에서 끌려다는 건가라는 생각도 할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출근길에서 듣는 유튜브 내용은 "무기력", "우울감", "일이 하기 싫을 때" 같은 키워드로 채워져 갔다.
그리고 "도파민 중독"이라는 키워드를 알게 되었다.
뇌의 작동의 기저 원리. 기가 막힌 생존의 컨트롤 타워인 뇌는 쾌락의 보상으로 도파민을 선물하고, 도파민 분비과다의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 반대의 상태를 만들어 내는 시소원리로 되어있다. 신체는 우주와 똑같이 평형상태를 유지하려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리고 그 반대의 상태는 쾌락의 반대영역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무기력, 그리고 우울감.
내가 느끼는 정말이지 지독 할만치의 무기력함과 그에 수반되는 엄청난 크기의 우울감이 단순히 나의 감정적 상태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이 뇌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라고 쓸 수 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사실은 그 영상을 보고 있는 내 상태도 이미 멍한 상태였던 것 같다. 유의 깊게 듣긴 했지만 그래서 뭘 어떡하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엄청나게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는 편도 아니었고 히스토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영상들은 거의 대부분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명강사들의 강연 목록뿐이었다. 더욱이 수많은 개인들의 일상이 거의 전쟁터처럼 쌓여있는 인스타그램은 앱을 삭제해서 어쩌다 한번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기에 내가 도파민 중독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정말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스토리를 올리고 엄지로 끊임없이 스크롤바를 움직이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번갈아가며 말 그대로 하루종일 보면서도 명랑하고 광고 찍듯이 그들의 삶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는 에너지가 넘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숏폼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시간이 뜰 때, 잠들기 전에, 일이 없는 날에는 밖에 나가기 귀찮아서 그냥 하루종일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들 그러니까 별 문제없다고.
하지만 머리의 논리보다 더 강한 것은 몸의 언어였다. 무력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괴로운 상태로 들이쳤다가 어떤 날은 머리가 약간 맑아지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렇게 약간 맑아진 상태에서는 삶이 좀 괜찮게 느껴졌다. 의욕도 생기고 일처리의 속도도 빠르고 경쾌했다. 그 기분이 좋아서 요즘 왜 이리 왔다 갔다 하지라고 끊임없이 스스로 자문하고 들여다보았다. 무력감이 동반하는 친구인 우울감은 생각을 계속 부정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타인과 세상의 반응에 필요이상으로 서운함을 느끼게 만들었고 때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극도로 피로해서 홀로 있고 싶게 만들었다. 무엇이 진실이든 중요한 건 이 상태로 살 수는 없겠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을 상대로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도파민 중독 치료]
하루에 숏폼을 보는 시간을 기록하고 그날 하루하루의 기분을 오전 오후로 체크해서 메모하는 일이었다.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즉 총 수면시간), 식욕, 무기력감, 우울감까지 총 다섯 개를 그냥 기록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나의 도파민 중독 치료기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다.